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사진사 Jul 25. 2023

챙겨야 할 것

고양이의 마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사이렌이 울렸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소음이 적막한 공간을 가른다. “따르르르릉” 도서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고 휘둥그레한 눈으로 사방을 응시한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긴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쏟아져 나온다. 끊이지 않는 사이렌 소리가 한층 크게 들린다.
대피 안내가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간다. 나는 2층에 있었는데 계단과 통로 쪽으로 벌써 사람이 가득하다. 아차 하면 넘어질 수도 있겠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로 뒤늦게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드는 사람도 있다.
나도 읽고 있던 책을 회수대에 올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안전불감증인지 불 냄새가 나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겁이 나지는 않았다. 내 앞으로 한 아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걸으며 ‘엄마 우리 죽어?’하는데 엄마는 피식 웃고 대답은 안 했다.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사이렌은 여전히 시끄러운데 슬리퍼를 끌며 귀찮다는 듯 천천히 걸어 나오는 사람도 보인다. 도서관 건물엔 한 조각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불 냄새도 남지 않는다. 사람들은 웅성이며 건물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오작동이었다고 하네요. 죄송합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도서관 직원이 나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한다.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방을 챙겨 나온 몇몇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오르니 책상 여기저기에 두고 나온 짐들이 보인다. 급한 마음에 챙기지 않은 것인지, 사이렌이 익숙했는지 다시 올라올 때 자리를 맡아두기 위함인지 구분은 안 된다.
문득 ‘실제 불이 났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제대로 대피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 난 가장 먼저 무얼 챙길까? 집에서 혹은 회사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난 어떻게 대처할까? 긴박한 상황을 가정한 우선순위를 고민하게 된다. 지갑과 휴대폰을 챙기겠지? 가방을 챙겨서 들고나오면 한 번에 다 되는데.. 집에 불이 나면 뭘 챙겨야 할까.
도서관 내 자리로 돌아온 이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만약’을 자꾸만 곱씹는다.
언젠가 엄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에 만약이 어딨어? 일어나지 않을 건 고민하는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어도 살다 보면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요즘은 ‘만약’을 신경 써도 되는 세상이 된 거 같아서 아쉽다.
뭘 챙겨야 할까? 사실 내 몸 하나 챙기며 사는 것도 어려운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