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의 첫 단추가 끼워지다
소설 - 가느다란 실
1.
모처럼 쉬는 날이라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았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다. 1층엔 남은 좌석이 없다. 2층으로 올라가 두리번거리다가 구석 안쪽에 비어있는 좌석 하나를 발견했다. 가방을 올려놓고 보고 싶은 책을 찾으러 일어난다. 오늘은 서양철학 서적을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온 터라 도서관에 오래 머물 것 같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갑자기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무방비 상태에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황급히 꺼내서 종료 버튼을 눌러서 껐다. 모르고 벨소리로 해놓았나 보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이게 무슨 민폐인가.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미안한 마음에 사방을 살피는데 대부분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머리 숙여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다행이다. 저쪽에 젊은 여자 한 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벨소리가 들려서였는지 우연히 눈이 마주친 것인지 모르지만, 미안하다며 눈시늉하고 목을 숙이며 인사했다.
가방은 그대로 둔 채 휴대폰을 들고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누구에게 전화가 왔는지 확인해 보는데 모르는 휴대폰 번호다. 요즘 대출이니 주식투자니 하면서 낯선 번호로 자주 연락이 온다. 내 이름과 어디 사는지 아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거겠거니 하고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꾸고 다시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잉 지~잉’
휴대폰이 진동한다. 멈춰서 확인해 보니 조금 전 그 번호다.
"여보세요. 어디신가요?"
"저기 혹시 이두용..씨인가요?"
"맞아요.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나요. 저 투자나 주식에 관심 없는데 전화 그만해 주세요. 전화 끊습니다."
상대방이 대답도 못하게 퉁명스레 급히 쏘아붙였다.
"잠깐만요. 우리는 꿈에서 여러 번 만났어요. 이 번호도 이름도 꿈에서 당신이 알려줬고요. 정말 이두용 씨 맞죠?"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요? 난 요즘 꿈같은 거 안 꿉니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맞는데 번지수가 틀렸어요. 진짜 끊습니다."
"조금 전에 눈 마주친 남자분 맞죠? 지금 밖에서 전화받으시는 거 맞죠? 도서관에 지금 테러가 나요. 어서 도망치세요. 그리고 내 말이 맞으면 이 번호로 전화하세요."
'툭-'
내가 전화를 끊을까 봐 다급하게 말을 이어가던 여자는 자기 얘기가 끝나자 전화를 끊는다.
"뭐래. 2023년에 서울에 무슨 테러..“
멍하니 서서 혼잣말을 하고 가방을 두고 온 도서관 2층으로 걸음을 옮기며 위를 올려다봤다.
"쾅쾅~~!!!"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도서관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며 순간 안쪽에서부터 화염과 자욱한 연기가 강한 힘을 쏟아내며 뿜어져 나왔다.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몸이 허공에 들리는가 싶더니 강한 힘에 밀려 몇 미터 날아가 계단 구석에 처박혔다.
"헉.. 허억.. 이.. 이게 무슨.. 일이야.."
급작스런 사고에 목이 눌렸는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사방에 떨어진 건물 잔해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부서진 집기물이 낮게 깔린 연기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뒤늦게 요란한 화재 사이렌과 함께 멀리서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내 의지로 손가락 하나 까딱이기 힘들다. 온몸이 부서진 거 같다. 엉덩이 쪽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다리 아래로 피가 서서히 퍼진다. 숨이 더 가빠지며 의식이 희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