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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ug 01. 2018

07_지금, 여기서, 미리 여행하는 삶*

하와이 편

하와이에서 반년,

중미에서 한 달, 서촌에서 반년.

어느 생계형 직장인이

1년간 놀면서 되찾은

77가지 삶 이야기.


하와이에 가기 위해 첫 번째로 준비한 건 가이드북을 사거나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수영 강습을 등록하는 거였지요. 수영을 전혀 못해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하와이니까, 지상천국에서 튜브의 도움 없이 우아하게 헤엄쳐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회사 근처 수영장을 끊었습니다. 아침 7시 초급반으로.


처음에는 많이 창피했습니다. 아무리 초급반이어도 기존 회원과 나중 회원 간의 레벨 차가 있어서 누구는 자유형, 누구는 평영, 누구는 접영 기초를 배우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음파음파는 아무래도 무안스러웠지요. 확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미 집 근처 수영장을 일주일 만에 그만둔 전력도 있고, 지금 포기하면 괜한 트라우마가 될 거 같아서 겨우겨우 몇 주 버텼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이었을까요. 킥판을 떼고 어느 정도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되자 얼떨떨할 정도로 수영이 재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월수금 수업시간에만 나가던 수영장을 화목토일까지 나가게 되었고, 출근 전에 한 번 퇴근 후에 한 번 가는 날도 빈번해졌지요.  


수영장에 도착하면 간단히 샤워를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짧게 준비운동을 한 후 물에 들어갑니다. 살짝 점프하면서 발바닥으로 수영장 벽을 탁 치는 동시에 팔을 쭉 뻗어 손끝으로 물을 가릅니다. 종아리를 부드럽게 두세 번 젓순간, 물의 찬기와 몸의 열기가 섞여 알맞게 변하는 물의 온도. 손바닥을 물에 툭 얹은 후 사악 밀어낼 때의 촉감. 발등으로 물을 지그시 누를 때의 말캉함. 물속을 보았다가 바깥을 보았다가 물속을 보았다가 바깥을 보는 일련의 동작. 그 동작이 만들어내는 평안함. 레일을 한 바퀴 돌 때마다 속으로 외치는 카운트. 바퀴를 점점 늘려가는 기쁨. 수영은 커다란 발견이었습니다.


그리고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유난히 아침잠이 많아서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들로부터 “엄마와 함께 등교해라”, “너 이러다 커서 회사 가면 잘릴 1순위”, “자기 결혼식에도 지각할 애”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 모진 잔소리도, 사랑의 매도, 화장실 청소도, 운동장 쭈그려 뛰기도 저의 늦잠을 고쳐주지 못했지요. 하지만 수영장을 다니면서 저의 생활패턴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선생님들이 아시면 괘씸 해할 만큼요. 수영 수업이 있는 날에는 얼른 수영장에 가고 싶어서 새벽 6시 20분이면 눈이 번쩍 떠졌으니까요. 회사에서도 지각쟁이 꼬리표를 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막판에 몰아서 하던 업무도 그때그때 집중해서 끝내고, 저녁 약속도 되도록 밤 9시를 넘기지 않습니다.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나고 일찍 일어나야 수영장에 갈 수 있으니까 말이죠. 생활이 바뀔 정도의 재미, 태어나서 이토록 느낀 적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자연이 만든 천연 수영장, 오아후 마카푸 타이드풀(MAKAPU’U TIDE POOLS)


아마도 저의 하와이 생활은 수영 강습을 등록한 그 날부터 시작되고 있던 것 같습니다. 하와이 덕분에 수영을 시작했고, 덕분에 창피함을 견뎠고, 덕분에 즐거움을 알았고, 덕분에 스트레스가 풀렸고, 덕분에 아침마다 설레며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수영 수업이 있는 날이라는 이유만으로 월요일이 오는 것도 그리 싫지 않았습니다비록 몸은 한국에 있지만 하와이를 위한 삶이 시동을 걸고 조금씩 움직이고 있던 거지요.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나라를 미리 여행하며 살아갑니다.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마음에 드는 숙소를 골라보고, 가고 싶은 곳의 사진을 저장하고, 혹은 퇴근 후 서점에 들러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거나 그 나라의 인사말을 배워보면서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를 미리 여행하며 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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