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사했습니다.

품고 있던 사표를 던지기까지

by 도피라이터

드디어, 대표와의 길고 긴 기싸움 끝에 퇴사했습니다.

그동안 대표와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제 마음이, 감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글에서도 나쁜 마음이 나올 것 같아 적지 못했습니다.

선한 영향력만 드리고 싶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설명하자면,

대표는 무법자였고 법망을 벗어난 편법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본인이 시킨 일에 대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었고, 천진난만한 사회초년생들을 가스라이팅하며 군림하고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대표를 만났을 때는 동갑내기이기도 했고 굉장히 트렌디했으며 직원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말들로 저를 가스라이팅 한 걸 수도 있지만요.)

그동안의 마케팅 회사에서는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와도 예산때문에, 혹은 새로운 도전을 싫어하는 문화 때문에 묻히는 일들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동갑내기 대표라면, 그것도 도전하는 것에 돈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따라갔습니다.

그 어떤 체계조차 없던 스타트업에, 사업자만 달랑 있던 곳에 말이죠.


하지만 막상 입사를 해보니

직원들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내세우기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모든 일의 방향성이 성공과는 정 반대로만 흘러가는 것을 보고 많이 후회했습니다.

심지어 직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알바생을 뽑아놓고 퍼포먼스를 교육시켜서 하라고 하지 않나.. 갑자기 개발해보라고 하지 않나..

모르면 GPT한테 물어보라면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업무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회사들을 많이 경험해봤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제 경력에서만 알 수 있는 노하우를 아무것도 모르는 알바생에게 교육해주길 원했고 가이드자료로 문서화 시키려고도 했죠.

처음엔 교육시켜줬습니다.

알바생이 딥한 부분까지는 몰라도 세팅할 수 있게 되자 저를 무시하기 시작하더군요.


예의를,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저도 손해는 보지 않으려 머리를 썼습니다.

무리하게 제 노하우까지 적어달라고 하는 일에 대해서는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정도의 가이드를 가지고 GPT로 그럴싸하게 정리만 해드렸고

이전 회사에서 썼던 자료를 요구할 때는 중요한 정보를 개인 파일에서 미리 지우고 수정이 어려운 pdf 파일로만 전달했습니다.


어쩌겠어요 제가 선택한 길인걸. 최대한 하라는 대로 했지만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진행했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더라도 데이터에 기반한 근거를 내세우며 설득하고자 했고

직원들을 함부로 대할 때는 직원들을 다독여주며 다시 으쌰으쌰 해보려고도 했고 대표한테는 개인적으로 팀원들을 좀 더 생각해달라 요청드리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업무적으로만 그런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을 텐데, 비도덕적인 신념과 편법을 일삼는 모습에서, 그 일을 내 손으로 해야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결국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무법한 내용에 대해서는 차마 공개하진 못하겠네요. 최근에 알게 된 내용이고 알게되자마자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10월이면 1년이라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한달치 월급보다도 나를 부정적으로 바꾸는 사람과의 인연을 하루 빨리 끊고 싶었습니다.


제겐 돈보다도 제 자신이 너무 소중했고

커리어보다도 도덕성이 더 중요했습니다.


요즘 취업시장이 정말 어려운게 눈으로도 보이던데..

잡코리아나 사람인에만 가도 작은 회사에 100명씩 몰리는 것을 보고있자니

진짜 지금 퇴사하는게 정말 잘하는 일인가.. 싶지만

원래는 환승이직도 진행하고자 했지만..


딱 지금 시기에 또 저를 이용해먹기 위한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더라고요.

다른 경력직을 뽑을 건데, 직무는 다르지만 확실히 겅력자라 다르다~ 하면서 저랑 대놓고 비교하고

직원들 앞에서 저를 무시하기 시작했고요

아마 그 경력자가 오면 직무가 다르기 때문에 또 저보고 교육시키라고 할 것 같아서

그 전에 퇴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경력자가 7월 중순에 온다는 얘기를 들었고

정확히 7/1일, 오전 7:40분에 6월 월차가 발생하자마자 7/14일 월요일로 연차를 올렸습니다.

(핸드폰 어플로 관리합니다.)

대표한테 알림이 간 지 1분도 안되서 바로 승인을 해주더군요.

그리고 올블랙 드레스 착장에 세미스모키 화장을 하고 출근했습니다.

훗.

그 회사의 장례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대표가 출근한 건 11시쯤이었는데. 출근하자마자 면담하자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표를 던졌고

환승이직은 아니었으나 환승이직인 것처럼 했고

14일 퇴사로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14일은 연차죠.


그렇게 전 제가 할 수 있는 걸 했습니다.

인수인계도 정말 이 업무가 이어져 나갈 수 있을 정도만 작성하고

기술적인 부분은 단 하나도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나머진 말로 설명했죠.


그렇게 오늘. 퇴사했습니다.

연차라 집에서 쉬고 있지만.


장장 8.5개월이란 시간이.

짧으면 짧지만 길면 긴

그 시간동안

첫 3개월은 어떻게든 맞추려 노력했고

또 4개월은 많이 싸우고 실망했으며

마지막 1.5개월은 자포자기로 퇴사계획을 세웠습니다.


문득 지금 저를 돌아보게 되네요

아무리 대표가 그런 사람이라할지라도

과연 나는 잘했을까?

내가 대표를 무시한 적은 없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더럽고 치사해도 참고 잘하는데

내가 정의감에 사로잡혀서 그냥 못넘어가는게 아닐까?

자신이 소중하다는 핑계로 힘든 일을 쉽게 포기하는 건 아닐까?


과연 8.5개월이란 시간이

그런 사람과 그런 일들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쉽게 포기하는 시간일까. 충분히 견뎠던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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