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신호등

by 도라

어느 늦은 여름 날,

한 노부부가

길을 건너려 한다.


신호등 앞 우거진 나뭇잎이

빨간불에 비춰

붉게 물들었다.


여보, 저거 좀 보시오.

나뭇잎이 붉게 물든 게

꼭 단풍 같지 않소?

남편은 이리 말하고

아내의 손을 꼭 잡는다.


아내는 별말 없이

붉은 나뭇잎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곤 남편의 손을

꼭 쥐어 본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뀐다.

부부는 길을 건너지 않고,

함께 신호등 앞 나뭇잎을 바라본다.

더 선명해진 초록의 빛깔.


그 옛날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던 때를 떠올리며

부부는 잠시 상념에 젖는다.


삶이 비록 풋내나고 쓸쓸한 여정일지라도

우연히 신호등을 보고

단풍을 떠올릴 수 있는 이가 함께 있다면

그 삶은 꽤나 살아봄직하지 않겠냐고,

부부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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