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덕질의 순기능

by 도라

1. 삶의 동력

물론 인생을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황망하리만치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쫓아왔던 꿈, 지금 하는 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등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떤 것도 내게 아무런 의미를 던지지 못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해 답을 전혀 찾을 수 없고, 믿어 왔던 나의 재능마저도 착각이라 느껴질 때,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지금 바로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미련이 없겠다 싶다가도 아직 못 들어본 최애의 노래에, 아직 못 가 본 콘서트에 미련이 남아 '아차' 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의 컴백곡을 듣기 위해서, 내년에 콘서트에 가기 위해서, 이들이 더 멋지게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기 위해서 그래도 다시 인생을 살아내 볼 희망을 가진다. '내년에 콘서트 가려면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이런 식으로 말이다. 팬심은 삶의 동력이자 고단한 삶을 버티게 만들어주는 마음이다.


2. 부끄럽지 않은 오타쿠 되기

내가 누군가의 팬이라는 걸 공공연하게 밝히고 다니면 유독 행동을 더 조심하게 된다. '누구누구의 팬이 이런 예의없는 행동을 하더라' 등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에 티끌만한 흠집조차도 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굿즈 인형을 키링으로 달거나 티셔츠를 착용했을 때(눈에 확연히 보일 때) 더 바르게 살게 된다.


3. 덕질 외 절약 정신

굿즈 구매, 콘서트 예매, 팬미팅 예매, 앨범 사기 등 덕질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소비도 뒤따르게 된다. 3만원짜리 굿즈 인형은 사이트에 뜨자마자 쿨하게 구매하지만 평소에 입고 다닐 옷 고를 때는 3만원도 비싸게 느껴진다. 그래서 5만원짜리 굿즈 티셔츠를 사고 그 티셔츠를 평소에도 입고 다니기로 한다. 커피는 절대 밖에 나가서 안 사 마시고 회사 커피 머신을 사용하거나 집에서 캡슐 커피를 내려 마신다. 그렇게 좀좀따리 열심히 아껴 콘서트 티켓을 예매한다. 아무리 비싸도 무조건 제일 좋은 자리를 노린다. 덕질을 위해 한 푼 두 푼 아끼고 모아 덕질엔 탕진하는 삶을 살다 보면 가끔 현타(현실 자각 타임)도 오지만 팬심이 남아 있는 한 끊을 수 없는 습관이다.


4. 여행을 가장한 덕질, 덕질을 가장한 여행

아이돌은 해외 콘서트나 팬미팅을 여는 경우가 많다. 공연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한 번 갔다 오면 여운이 장난 아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해외 콘서트나 팬미팅도 가 보고 싶어 예매창을 기웃기웃거릴 수 밖에 없다. 공연 세트리스트는 같을지라도(요즘엔 날짜별로 세트리스트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경우도 많다) 그날의 분위기와 멘트 등 다르게 즐길 요소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나라에 가 관광까지 함께 즐기다 오면 휴가를 굉장히 알차게 썼다는 합리화도 가능하다. 물론 직장인이 콘서트 날짜에 맞춰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휴가까지 여유 있게 쓴 후 여행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확률은 적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번 맛보고 나면 다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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