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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Feb 20. 2019

이민을 와서 이사를 가다

독일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 하지만 실제 생활은 쉽지 않다.

 초등학교 입학 당시 첫째는 1학년 75명의 아이들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같은 학년에 태국인과 중국인이 4-5명씩 있는 것과 비교하면 뚜렷이 적은 숫자였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초등학교 전체를 통틀어도 한국인은 단 2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인 학생이 전학을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학 오는 아이의 적응을 돕기 위해 우리 아이와 같은 반에 배정했고, 옆자리에 짝꿍으로 앉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인 아이가 전학 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기뻤다. 아이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우리 가족 역시 전학 오는 아이의 가족과 어울릴 수 있으리라 내심 기대했다. 나는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둔 한국인 가족들과 교류하는 것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전학 오는 아이와 그 가족들이 독일 생활에 잘 적응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무슨 일로 독일에 오는 것인지, 잠시 일하러 오는 것인지, 완전히 이민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가족들은 처음부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전학 온 아이는 운동장에서 놀다 크게 다쳐서 응급실에 실려 갔고, 김나지움에 다녀야 하는 나이인 누나는 학교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그들은 독일어를 잘하지 못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독일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어딜 가든 항상 그가 따라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전학 온 아이의 어머니를 만났다. 한국 사람을 만난 게 반가워선지 나를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많이 다쳐서 병원에 갔는데 다행히 한국인 의사 선생님이 있어서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로 시작해서, 낯선 이국 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호소가 이어졌다.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독일 사람들이 생각만큼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직원들은 물론 선생님들조차 거의 영어를 하지 못했다.


 어쩌다가 독일로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예전에 유럽 여행을 다닌 적이 있는데 독일이 너무 살기 좋고 마음에 들어서 이민을 생각했다, 최근에 한국에 있는 재산을 정리해서 이민을 왔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어려운 점이 너무 많다, 이민을 위해 독일에 있는 한국인 점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내에 있는 한국인 마트.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다(본문의 내용과는 무관함).

 더 이상의 구체적인 사정은 듣지 못했고 묻기도 어려웠다. 아마도 이민을 주선하는 업체 측에서 계약과 관련된 잘못을 저질러 곤란한 입장이 된 것 같다고만 생각했다. 결국 그 가족들은 한 달쯤 후 이곳을 떠나 독일의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 도시에 지인이 있고 집세와 생활비가 조금 덜 든다는 이유였다. 나중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3억 원 정도를 투자하여 한국인 점포를 인수하면 독일 비자가 나온다고 했다. 그 가족들의 전후 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안타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이민을 꿈꾸는 한국인들이 많다. 독일은 주요 이민 후보국 중 하나일 것이다. 1년 넘게 살아본 바에 의하면, 독일은 살기 좋은 나라다. 도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녹지가 많고, 공기도 깨끗하다. 내 집 마련은 어려워도 적당히 월세를 지급하면서 살기는 어렵지 않고, 유럽의 다른 나라와 미국에 비해 월세도 저렴한 편이다. - 물론 지역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사회안전망이 잘 되어 있어서 열심히 살기만 하면 현재의 위험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자랄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인종차별도 거의 없고, 과거에는 일본인, 최근에는 중국인들로 인해 발전한 도시라서 아시아인들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다. 근로 시간이 한국보다 짧아서 여가를 즐길 수 있고 주변 나라들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독일에 살다 보니 이곳으로 이민 오려는 한국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특히 컴퓨터(IT)나 전기, 전자 등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한국에 비해 근로시간은 월등히 짧고 대우는 훨씬 좋으며 무엇보다 직업인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다. 직업의 귀천이 거의 없는 데다가 ‘소비자’ 아닌 ‘근로자’가 주인인 곳이라서 자신이 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한국에서 공고나 전문대를 졸업한 기술자들에게 독일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독일에서는 기술직 일자리에 사람이 부족해서 한국인들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들을 거의 반대로 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세대와 성별 간의 갈등은 날로 악화되는 것 같다.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고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나라에서 희망찬 미래를 볼 수 없다는 사람도 많다.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로 이민을 꿈꾸며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드물다고 할 것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안정적인 직업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욱 와 닿는 말일 것이다. 가진 것이 있고 어느 정도 사회적인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많지 않다. 돈을 가진,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는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은 나라다.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과 이민을 꿈꾸는 사람이 모두 많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독일에 살고 싶어 했고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만 이민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몇 년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을 뿐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갈 생각은 없다. 그것은 그만큼 내가 한국에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많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언어가 다른 것이 하나의 이유이고, 무엇보다 이곳에 살면 뿌리를 내렸다는 느낌 없이 둥둥 떠서 살아갈 것 같기 때문이다. 이민을 와서 평생을 산다고 해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 발이 닫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나 영국 같은 유럽의 가까운 나라에서 온 서양인들도 그러한 마당에 머나먼 동아시아에서 온 내가 오죽하겠는가.

출처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22435.html

 몇 개월 전인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독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독일의 여러 가지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 교육제도 등을 말하면서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회 제도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이에 대해 함께 출연한 유시민 작가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나는 모든 문제를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는 데 동의를 안 해요. (그렇다고)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사회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벗어날 수 없고, 마음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사회적 해결이 어려워요. 그 중간쯤 어디예요.”


 ‘중간쯤’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동의한다. 우리의 실제 삶의 모습은 사회구조와 우리의 마음을 연결한 선의 중간쯤 어디에서 약간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즉, 사회구조-삶-마음이 삼각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삼각형의 각 꼭짓점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여서 사회구조로 인해 실제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의해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는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의 마음은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우리의 마음은 사회구조를 바꿔서 실제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사회구조 역시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이민을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를 꿈꾼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대단한 정치인이나 권력자가 아닌 이상 단숨에 사회구조를 바꿀 수 없고, 우리에게는 지금의 삶의 현실을 갑자기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마음’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출발해서 삶과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통해 실제 삶을 조금 변화시키고,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사회구조를 바꿈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언정 사회구조는 결국 사람들의 염원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의식은 그 나라의 현재 모습을 반영한다.


 독일에 와서 1년 정도 살았을 때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처음 펼쳐 들고 읽은 (별 것 아닐지 모르는) 서문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것은 내가 이민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와 관련 있을 것이다. 이 서문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 년 전에도, 수수만 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2013, <밤이 선생이다>, 4-5쪽)


 어떤 사람들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 어딨느냐,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가 어우러져 사는 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아가기에 급급하고, 남들과의 경쟁에만 정신을 쏟느라 저 꿈을 잊고 있거나 군소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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