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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Feb 28. 2019

무덤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잊고 살아서도 안 된다.

   예전에 살던 집과 대학교 사이에는 뒤셀도르프에서 제일 큰 공원이 있었다. 가장 짧은 길을 택하여도 관통하는 데 30분이 걸리는 크기였다. 집에서 대학교까지는 걸어서 40분이 걸렸는데, 종종 공원을 통과하여 출퇴근을 했다. 학교 도서관에 있다가도 틈만 나면 공원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공원은 북쪽의 숲과 작은 호수, 남쪽의 구릉지대와 큰 호수, 동쪽의 커뮤니티 정원(개인 정원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공원 내에 구획을 나누어 정원을 분양한 것이다), 서쪽의 공원묘지로 나뉘어 있었다. 공원묘지는 공식적으로는 별도 관리되는 지역이지만 공원과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출입이 자유로워서 공원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학교에서 출발 해 남쪽 구릉지대의 한가운데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호수를 두세 바퀴 돌고 오거나, 서쪽의 공원묘지 안을 걷는 것이 산책의 주된 경로였다.       


 호수 주변을 걷는 것도 좋았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장소는 공원묘지였다. 이 묘지는 1904년 만들어져 11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이 도시에서 두 번째로 큰 묘지로 면적은 우리나라 올림픽공원의 1/3 크기에 해당하는 47헥타르이다. 면적이 넓은 만큼 많은 무덤이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공간도 많아서 어느 구역에 이르면 묘지라기보다는 그냥 공원 같았다.

공원묘지 내부의 거리. 오른쪽에 무덤의 흔적이 보이지만 여느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원묘지에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서두르던 발걸음을 조금 늦추게 되었다. 묘지 내에는 십자가형의 큰길을 제외하고는 좁은 길이 규칙성 없이 이리저리 이어져 있어서 나도 모르게 이 무덤 저 무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면 묘비에 적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했다.      


 독일의 묘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봉분을 만들지 않고, 안장을 한 곳에 네모난 테두리를 두르고 비석을 세운 형태였다. 모든 묘지의 모습은 제각각 달랐다. 저마다 비석의 색깔과 모양이 달랐고, 무덤의 크기와 주변에 놓인 장식물 또한 각기 달랐다. 살아 있을 때 사람들의 얼굴이 다른 것처럼 죽어서도 똑같은 모습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음 후에도 그가 가진 재산이나 지위가 중요한 것인지, 크고 화려한 비석이 세워진 넓은 공간에 안장된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겨우 나무로 된 십자가와 조그만 자리를 차지할 뿐이었다. 가장 큰 무덤이 대략 가로 세로 2m 정도이고, 가장 좁은 것이 가로 세로 0.5미터이니 부자는 죽어서조차 16배나 넓은 땅을 차지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살아생전에 가졌던 것의 차이를 헤아려 보면, 죽음 이후에는 삶의 불평등이 그나마 해소된 것일 수도 있다.     

비교적 넓은 자리를 차지한 무덤. 하지만 가족 구성원 5명의 것임을 생각하면 그렇게 크지 만은 않다. 이 가족들은 살아 생전에도 저렇게 다정했을까?
간소하게 만들어진 작은 무덤들.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크기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무덤이 관리되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넓은 땅을 차지하고 그럴듯한 묘비가 세워져 있다고 해도, 주변의 꽃과 나무가 시들고 땅바닥이 갈라진 무덤이 있는 반면, 작고 보잘것없어도 싱그럽게 핀 꽃이 놓여 있는 깔끔하게 정돈된 무덤이 있었다. 그런 보살핌의 손길이 죽음에 굴하지 않는 애정인지 뒤늦은 후회인지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에 의해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은 뒤에 사랑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죽어서도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싫지 않은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는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꺼려지고 죽음을 연상케 하는 것을 멀리 하게 된다. 아버지는 늘 오래 살기를 꿈꾸신다. 건강을 염려하시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다. 아버지의 꿈은 가능한 죽음과 멀리 떨어져서 90살, 100살이 될 때까지 장수하시는 것이다. 어머니는 반대로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라고 항상 말씀하신다. 죽으면 오히려 걱정 없이 편안할 것이라고 하신다. 어머니의 말씀이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한결 죽음에 대해 초연한 모습을 보이신다. 하지만 어머니 역시 10년 전에는 “자식들 결혼할 때까지는 살아야지”, 요즘에는 “손자들 클 때까지는 살아야지”라고 하신다. 어머니도 가능한 죽음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신 것 같다.     


 나는 아직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 죽음이 가까이 올 때에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기분일 것이다. 딱 하루 그런 날이 있었다. 20대 후반의 어느 날 밤이었는데 갑자기 섬뜩하고 육중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죽음이 두려워졌고 언제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두려워졌다. 그날 밤새도록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종의 공황장애 증상이 아닐까 싶은데, 단 하룻밤 그런 공포를 느낀 후 그런 감정을 경험한 적은 없다. 그래도 이것이 내가 죽음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본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어느 샌가 묘지 안을 걷게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원묘지는 공원의 서쪽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산책을 하다가 묘지로 드나들기도 한다. 그리고 묘지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독일의 묘지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 안이나 근처에 만들어져 있다. 어떤 경우에는 마치 놀이터라도 되는 듯이 아주 무심하게 집들 사이에 작은 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작년에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였는데, 지쳐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 들어간 집 앞 공터가 묘지여서 놀란 적이 있다. 그만큼 삶과 죽음이 붙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일까. 무덤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독일어로 묘지는 Friedhof(프리드호프)라고 한다. Fired는 평화, 평안을 뜻하고, Hof는 전당이나 집을 의미한다. 결국 묘지는 평화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말의 묘지(墓地)는 ‘무덤이 있는 땅’이다. 독일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치열한 삶을 마치고 평화롭게 잠드는 곳이 묘지다. 그래서인지 묘지에는 군데군데 긴 의자가 있어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공원묘지나 집 근처 묘지를 찾아 지친 걸음을 달랜다. 영원한 휴식에 이르기 전에 미리 준비라도 하려는 것일까.     


 우리의 모든 걱정과 고민은 앞으로 계속 살아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6개월 후 혹은 1년 후에 죽는다면 그리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걱정과 고민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틈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오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다. 사람들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까지, 즐겁지 않은 일까지 억지로 즐기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마치 우리의 삶이 6개월 혹은 1년만 남은 것처럼 다른 걱정과 고민 없이, 다른 사람의 요구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라는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기는 힘들다.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 죽음에 관한 이런저런 글귀를 찾아보았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존재할 때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존재할 때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을 항상 염려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잊고 살아서도 안 된다. 죽음이 주는 공포는 느끼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주는 생의 긴장감과 소중함은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한쪽 눈으로 책을 읽으면서 다른 쪽 눈으로 TV를 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두 감정을 동시에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공간이 공원묘지다. 수많은 비석들 사이를 걷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환희와 언젠가는 죽는다는 긴장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런 묘한 감정은 삶을 내 의지대로 끌고 나갈 힘을 주었다. 우울한 기분은 달래고 즐거운 마음은 더욱 실감하게 해 주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공원묘지야 말로 죽음이 삶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묘지와 무덤은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묘지와 무덤은 불길한 장소가 아니다. 감추고 멀리할 것이 아니라 끌어 들어야 할 공간이다. 하지만 무덤을 지금 당장 이장할 수는 없을 터. 마음속에라도 가까운 곳에 두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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