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적 추정된 f코드

F32.1

by 도라미

진단서를 받아왔다. 8줄 남짓한 문서에는 1년여에 걸친 정신과 치료 기록이 담겨 있었다. F32.1, 중증도의 우울 에피소드. 최종 진단은 아니었다. 이 서류들을 들고 대학병원에 가야 하고 필요하다면 입원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몇 달 동안은 현실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몽롱한 상태로 현실을 사는 기분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어디서부터 무너졌을까. 고칠 수는 있는 걸까. 정말 망가진 게 맞기는 한걸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으며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원래 사는 게 다 이런 것 아닌가요? 이런 것도 견디지 못하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건 제가 선택한 일이었고 제가 결정한 삶이잖아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 패턴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데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저는 언제까지 이 상태로 있어야 하나요. 선생님은 그에 대한 답으로 입원치료를 권유하셨고 나는 내 1년의 일지가 담긴 종이쪼가리를 들고 또다른 병원에 가야 한다. 새로운 사람 앞에서 또다시 내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한다. 이제는 그것이 정말 사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했던 생각과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다.


때로는 내가 이 분야의 전공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아픈 자신을 수용하거나 자비를 베풀지 못하는 내가 과연 타인에게는 그런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진창이고 엉망이다. 이런 나에게 상처가 하나 더 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작가의 이전글구깃구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