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히 글을 그리다
가슴에 묵직하게 늘 그리운 게 있다.
그립지만 딱히 뭐라고 꼬집어 낼 수도 없는 것들!
그건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형체없이 정서만 아련히 남은 것들이겠다.
유년 시절의 어떤 놀이, 어머니 손맛이 가득한 음식들, 그 안에 베인 웃음과 푸근한 정이다.
제주 토속 음식 중에 '빙떡'이라는 게 있다.
곱게 간 메밀가루를 얇게 부친 다음,
거기에 파와 참기름,소금으로만 간을 한 무채를 넣고 멍석 말듯 빙빙 말은 음식이다.
복잡한 건 아닌데 느긋이 앉아 해 먹을 여유가 없던 그 시절에는 제삿날에나 볼 수 있는 요리였다.
아버지는 메밀 음식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열번에 가까운 제사 명절 때마다 메밀 음식을 했다.
그 중 가장 고난이도는 메밀쌀을 물에 이겨 전분을 빼낸 다음 그걸로 쑨 묵이었다.
어머니와 내가 번갈아 가며 몇시간을 치대고 저어가며 얻어낸 맑은 묵은 노력에 비해 양이 많지 않았다.
해서 아버지가 맛 한 번 보는 것 말고는 제사 전에 함부로 잘라 먹을 수 없었다.
그에 비해 빙떡은 시간만 들이면 손쉬운 요리였다.
무와 메밀만으로 만든 빙떡이 나는 그렇게 맛있지 않았다.
맛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이런 걸 왜 먹나 싶었다.
그럼에도 제사 음식을 할 때면 빠짐없이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돌아 가실때까지.
그 후 세월과 함께 그 음식은 까마득히 잊혀졌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 빙떡이 사무치게 먹고 싶어졌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힘만 들게 했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그때는 할머니처럼 보였지만 지금 보면 한참 젊은 나이.)
내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를 넘어설 때, 그 때였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몸이 더 피폐하던 때였다.
삶이 너무 고단하고 힘들고 외로워서 눈물로 지새우던 나날이었다.
엄마가 몹시도 그리웠다.
풍신하고 따듯한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한 번만 펑펑 울 수 있었으면 한이 없겠는데,
그런데 동생들이 생기면서 한 번도 안겨보지 못한 어머니의 품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신 아프면서 몸을 가누지 못해 내 품에 안겼던 어머니의 체온을 기억해냈다.
빙떡 한접시를 만들어 놓고 입이 미어 터지게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얼마나 크게 베어 물었는지 빙떡이 입안에서 침에 녹을 때까지 한동안 입을 움직일 수 없었다.
추운날이면 좁은 방안에 둘러 앉아 빙떡을 만들던,
사진처럼 딱 박힌 그 순간이 몹시도 그리운데, 맛은 여전히 없어 하면서 눈물도 한 웅큼 흘렸다.
근데 어떻게 된 게 아무리 먹어도 속이 허한 게 메꿔지지 않았다.
그래서 또 울었다. 울면 어머니가 두툼한 손으로 내 어깨를 끌어 안아 줄 것 같았다.
한입 베어물고 울고, 또 한 입 베어물고 울고,
울면서 어머니 품을 파고 들듯 계속 계속 계속 빙떡을우겨 넣었다.
그리고 세월이 갔다.
지금은 빙떡 대신 빙떡을 흉내낸 메밀쌈을 주로 해 먹는다.
무채 대신 내가 좋아하는 과일과 야채를 가득 넣고, 그에 맞는 소스를 얹는다.
밥 대신에 혹은 간식으로 먹는 이 메밀쌈은 묵직한 그리움을 담은 새로운 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