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치유
새벽에 나를 깨우는 건 지독한 두통이었다.
처음에는 알 듯 모를 듯 미세한 두드림으로 시작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집어삼킬 듯 맹렬해지는 통증!
그와 동시에 자고 있던 이명(耳鳴)도 활짝 깨어나, 도끼로 내리찍듯
뇌를 두드리는 두통과 함께 사람을 혼미하게 만든다.
새벽 2 시건 3 시건 정해진 시간은 없었다.
그저 두개골을 부수는 듯한 통증으로 더 자고 싶은 나를 흔들어 깨울 뿐이다.
어떤 날은 정도가 너무 심해서 이러다 딱 죽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잠이 덜 깨어 몽롱한 채 일어나 앉아 벽에 몸을 기대어 본다.
머리가 위로 올라가자 두통이 좀 가라앉는 듯하다. 그러자 잠이 쏟아졌다.
반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베개를 끌어안아 모로 누웠다. 아주 잠깐 깊은 잠에 빠진 듯하다.
하지만 두통은 다시 또 맹렬해지기 시작했고, 잠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어 침대를 내려왔다.
물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가부좌를 하고 두 손을 모았다.
잠이 든 생명은 그 무엇도 깨어 있지 않을 것 같은 고요한 시간,
나의 아늑한 공간에서의 어둠은 깊을수록 안온한 느낌을 준다.
나는 깊고 길게 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마시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살피고, 내쉬며 두통을 겪는 마음을 살폈다.
호흡에 따라 몸이 오르내린다.
근육이 저 혼자 슬쩍 움직이기도 하고, 손바닥을 살살 간질이는 게 왔다 가기도 한다.
그러다 뜨뜻한 덩어리가 뱃속에서 뭉쳤다 퍼지기를 반복하고,
그런 몸에 집중하다 보면 두통은 어느새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 먹을 때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두통은 말끔하게 사라진다.
다음 날 새벽, 다시 시작된 두통으로 몸부림치다 깰 때까지.
‘나는 왜 새벽마다 이렇게 두통에 시달리는 걸까?
며칠간 책을 뒤져보고, 검색을 하고, 전문의들의 너투뷰를 보며 새벽 두통을 일으키는
문제들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 다른 증상을 동반하지 않는 새벽 두통은 수면, 혹은 수면 중 호흡에
문제가 있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잘 자는데 수면 중 호흡 문제라니?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코골이 었다.
친구들과 여행 가서 한방을 쓰는데 내 코 고는 소리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말이 생각난 것이다.
그때는 무심코 듣고 말았지만, 코골이는 어떤 이유로든 숨길이 좁아지면서 생기는 일이다.
근데 만약에 숨길이 조금 더 좁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마침내, 내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밤사이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깊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면서 종종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도 모르게 탄식이 절로 나왔다.
숨은 생명이다.
일부러 의식해 알아주는 일 없어도, 사는 동안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에 놓일 때도
숨은 알아서 내 목숨을 건사해 준다.
그 어떤 경우에도 살아있는 한 우리는 숨을 쉬고, 숨을 쉬고 있는 한 우리는 살아있다.
그런데 죽지 않은 내가, 단지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인 내가 숨을 쉬지 않았다니!
코를 곤다는 것을 알기 이전에도
반듯하게 누우면 기도가 좁아진 듯 숨을 안으로 들이쉬기 힘들 때가 있긴 했었다.
그렇대도 나이를 먹고 살이 찌니 숨구멍이 좀 좁아졌나 보다 하고 말았다.
조금만 머리를 움직이면 금세 아무렇지도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깊이 잠들고 나면 나도 모르게 잠깐씩 숨을 멈췄던 모양이다.
질식사하기 직전 ‘컥’ 하고 숨을 몰아 한 번에 들이마실 때까지.
덕분에
‘돌연사’라는 계획에 없는 죽음 대신 이렇게 살아있다.
이렇게 살리기 위해 내 생의 본능이 뇌에 압력을 주며 한 번씩 몸을 뒤척이게 했나 보다.
밤사이 내가 완전히 숨을 멈추는 일이 없도록 안간힘을 쓰면서 새벽까지.
마침내 내가 일어나 몸을 움직여 몸 안으로 충분히 산소를 공급해 줄 때까지 말이다.
숨은 몸과 영혼을 연결한다.
몸과 영혼이 온전히 함께해야 앞으로의 삶도 이어진다.
'오늘은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겐 살면서 집착하고 욕망하는 이런저런 것들이 많지만
‘건강한 숨’보다 먼저일 수 있는 게 있을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탈하게 저절로 쉬어지고 있는 ‘숨’에 무한한 사랑을 담아 감사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