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히 글을 그리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TV화면 속에 비치는 바닷가는 뒤집어지고 거대한 나무들이 쓰러지며 사람들의 가슴도 쓸어내리게 한다.
언제나 그랬다, 그 무서운 놈은 뜨겁게 달구어지는 여름 햇빛을 견디며 가지마다 빈틈없이 매달린 귤이
달게 익어갈 무렵에 왔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려 할 때, 온 동네 사람들이 산천에 흩어진 산소를 찾아 벌초하려 할 때, 내 고향 제주는 그 온갖 이름을 가지고 거침없이 달려드는 태풍에 알몸으로 쥐어뜯긴다.
벌초하기 위해 멀리서부터 친척들이 오기 시작하는 건 바로 이 태풍이 올 때였다.
이름은 항상 다르지만 우리에겐 그저 태풍일 뿐인 이 거센 비바람과 함께 그들은 온다.
한 번에 대여섯 명, 우리 할아버지와 빼다 박은 듯 닮은 아버지의 육촌인 용섭 부자와, 용추삼춘이다.
그들은 올 때마다 같이 오는 사람들을 달리하며 얘깃거리들을 잔뜩 짊어지고 왔다. 친척이래도 멀어서 이렇듯 일 년에 한 번씩 벌초할 때 밖에 볼 수 없으니 그 반가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을 걸어 걸어서 왔고, 내일 다시 걸어 걸어 산길을 헤집고 다닐 그들을 위해 어머니는
맛난 먹거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마을 한가운데서 늘 사람들이 북적이는 집이지만 친척들이 왔을 때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은 핏줄 때문인가. 그들이 오면 넓어 보이던 마당이 복닥복닥해지고 친척이 없어 간혹 쓸쓸해 보이기도 했던
우리 집은,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고 더불어 잔치 집처럼 흥겨워진다.
대대로 우리 집 역사와 같이 했을 만큼 오래된 커다란 폭 낭(나무)이 나무그늘을 짙게 드리웠다.
그 그늘 속으로 뙤약볕을 뚫고 오느라 쓰러지게 지친 나의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들은 비 맞은 듯 푹 젖은 웃통들을 벗고 땀을 식히며 어머니가 미리 장만해 둔 쉰다리(쉬어가는 밥을 발효시켜 만든 오늘날의 유산균)로 목을 축인다.
그 시원하고 알싸한 맛에 그들은 어느새 생기를 찾아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
오고 가는 인사가 와글와글하고 반가움에 짓는 미소가 하회탈이다. 그들이 내지르는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하늘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손이 크고 넉넉한 어머니의 인심은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다.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놓는 어머니는 다른 이들에게 먹일 일용할 밑반찬 거리들을 항상 푸짐하게 만들어
놓았다. 된장 간장은 물론 하다못해 텃밭의 푸성귀까지. 어머니의 손놀림이 빨라질수록 나도 거기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 항상 그렇듯 우리 집 손님치레는 어머니와 나의 몫이었고, 삼시세끼 저 많은 식구들을 해 먹이려면 싫은 내색 없이 눈치껏 바지런 떨어야 했다. 그래봤자 기껏 잔심부름과 푸성귀 다듬는 일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나는 커다란 소쿠리를 들고 우녕팥(텃밭)으로 들어간다.
매미소리 요란한 텃밭에선 어디에선가 내려온 튼튼한 거미줄이 주인을 잃은 채 햇빛에 반짝거렸다.
그 빈 집이 자신의 무덤인 줄 모르는 벌 한 마리가 왱왱거리며 탐색하고, 여름 끝물인 야채와 과일들이
숨 죽여 익어가고 있었다. 철 지나도록 뽑히지 못해 멋대가리 없이 키를 키우고 있는 상추와 붉게 타들어가는 고추, 그 뒤로 보라 빚이 지쳐 검게 빛나는 가지가 그들이다. 땅에는 바짝 몸을 붙여 쭉쭉 뻗은 줄기 따라 참외와 수박이 달리고, 돌담을 뒤덮은 잎사귀엔 몸을 숨긴 호박들이 어울렁더울렁 잘도 익어가고 있었다.
이렇듯 땅 속에서부터 땅 위까지, 보이진 않지만 온갖 생명들이 숨 붙이고 있는 이곳은 저희들끼리 날마다 무언가 수작을 부리며 살아가는 곳이다. 이들은 이 여름의 마지막 태풍에 쓸려가기 전까지는, 다른 생명들의 의지가지 노릇도 충실히 할 것이지만. 일 년에 한 번 오는 우리 손님들의 밥상도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소쿠리를 들고 소리 없이 활기 찬 그곳으로 살그머니 들어갔다.
나의 출현은 그 조그만 생명들에게는 거대한 천재지변인지 조그만 풀벌레들이 오방난장 날아오르다 다시 왔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나는 재빨리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소쿠리가 가득해지도록 그것들을 따다 어머니한테 드렸다. 그것을 받아 든 어머니는 삶고 무치고 지지며 그저 푸성귀에 지나지 않는 그것들로 맛깔난 음식을 만들어낸다.
목수였던 할아버지가 만든 밥상 위에 자리가 모자라게 반찬그릇이 올라가고 어머니가 담근 오메기 술도 아낌없이 넉넉하게 상에 올렸다. 그러면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손님들 입에서는‘형수님!!, 제수씨!!,’ 소리가 절로 올라가고 어머니가 만든 음식 맛에 해마다 벌초 때가 그리워진다며 너스레를 떤다
깊어가는 여름밤, 바람의 느낌이 심상치 않고, 매미소리가 잦아드는 동안, 모기들은 더욱더 악착같이 달려들며 물어뜯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당 널찍한 평상 위에 자리한 그들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왁자하게 떠들다 보면, 어느새 동네 사람 한둘도 끼어들어 있곤 했다.
세월이 가고, 유년시절의 추억은 정겨운 모습으로 가슴에 남은 체 지금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여름이 오고 지나가려는 무렵인 지금, 여느 때처럼 벌초 얘기가 오가며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면 나는 왠지 가슴 한켠에 애리 듯한 통증과 함께 그때 그 왁자지껄하던 마당 평상에서의 풍경과
어머니의 손맛이 베인 나물무침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그래서 비가 오기 전에, 바람이 거세어져 태풍에 휩쓸리기 전에 나물무침거리를 사기 위해 나는 거리로 나선다.
내가 사는 곳에서 돌고 돌아가면 초라한 길모퉁이에, 그곳에 할머니 두 분이 쪼그리고 앉아 이런저런
여름 나물들을 팔고 있다. 오이, 상추, 호박잎은 물론 가지도 한 바구니 가득 담아 2000원이다.
나는 그중에 유독 좋아했던, (보랏빛이 지쳐 검어진) 싱싱한 가지만 골라 잔뜩 사 온다. 그리고 살아생전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가지를 삶아 쭉쭉 손으로 찢고 된장과 참기름 그 외 갖은양념을 더해 가지무침을 한다.
옆에서 보고 익히고 먹어본 솜씨로 얼추 비슷하게 됐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억 속의 그 맛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어머니가 직접 담근 된장, 간장, 참기름과 내가 쓰는 그것이 다를 것이고 또한 내 입맛이 달라져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때 그 시절의 왁자하던 정겨움과 푸근함이 덜 베여 들어가서 일지도...
바람이 거세어졌다. 하지만 이제 좀 있으면 태풍은 잦아들 것이고 이 여름도 지나가리라.
그러면 나도 사무치게 그리워지던 추억은 가슴 깊이 내려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2010년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