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과 초록과 나

담담히 글을 그리다

by 태은

눈을 감으면,
귤꽃 향내가 방안에 가득합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작고 하얀 꽃잎은 은은한 바람결에 수줍게 흔들리고, 나의 코끝은 향기를 쫓아 아득한 시간 속으로 날아 들어갑니다. 그곳엔 키 작은 나의 머리 위로 푸른 하늘과 맞닿을 듯한 초록이 펼쳐지고 하얀 꽃잎들이 눈꽃처럼 얹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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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스스로 떨어뜨린 꽃잎들이 서리처럼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잎이 지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갈 열매를 튼실히 하고, 제대로 지탱해 주기 위해 미련 없이 떨구어낸 것들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의 손에 의해 키워지면서도 자연의 본능적인 순환 시스템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비우고 덜어내며 자신의 분수에 맞게 열매를 거두려는 그 소박함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늘한 바람에

너무 많은 꽃잎들이 떨어져 내릴까 노심초사해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근심 많은 초록과 꽃잎은 내 생애 첫 과일인 귤의 시작입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워낸 그들은 열매가 사람의 손에 들어갈 때까지 유난히도 많은 해풍을 견디며 버텨야 하지요. 지금은 그저 꽃잎을 떨구는데 불과하지만 좀 있으면 아프게 키워낸 조그만 열매들이 툭하면

몰아치는 폭풍우에 하릴없이 가지째 부러집니다. 여름이 오기 전, 열매가 겨우 새끼 포도알만하고 나뭇가지에 단단히 고정되기 전에 말이지요. 휘몰아치는 바람의 힘을 빌린 과일나무들은 실하게 크지 못할 것 같은 열매들을 온몸을 흔들며 떨궈냅니다. 그리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제 몸도 찢어대며 나머지들을 보호하지요.


그러고 보면 나무하나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이 부러지고 휘어져야 하는지,

달디 단 과일을 입에 넣으면서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그 아픔을 모를 겁니다.


떨어진 열매가 푹푹 썩어 귤나무의 밑둥에서 거름이 되어갑니다.
그 거름 사이로 미리 뿌려둔 수박과 참외가 싹을 틔우고 쭉쭉 줄기를 뻗어가지요.

하루가 다르게 사방으로 뻗어나간 줄기는 어느새 꽃이 피고, 또 어느새 푸른 하늘과 초록들이 어우러진

그늘 밑에서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귤은 봄에 꽃피는 것에서부터 노랗게 익어 딸 때까지 거의 사계절 모두를 거칩니다. 하지만 이들 여름

과일들은 하룻밤 사이에도 얼굴이 몰라보게 자라나지요. 이런 추세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우주의 행성 같은 둥근 수박과 참외를 보게 될 겁니다.


바람이 서늘해지고 높게 달린 감 중에 성급한 녀석이 먼저 익어 떨어질 때쯤 귤색깔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익어가지요. 느릿느릿, 빛의 기운이 다 빠질 때까지 밀감은 끈질기게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다 우리 입에서 수박, 참외는 물론이고 복숭아와 감의 달달한 맛까지 미각에서 멀어질 때쯤 생색내듯 풋과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단맛은 옷섶깊이 감추고 눈살이 찌푸려지게 신맛만을 내세운 채로 말이지요. 귤이 애타게 그리웠던 사람들은 그것도 마다하지 않고 덥석 덥석 깨물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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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꽃



저 당시 TV를 보면 사과와 배를 깎아 예쁜 접시에 담아 먹는 모습이 어찌나 고급지고 우아해 보이던지요.

우리 동네는 겨울이면 지천으로 귤이 깔리지만 사과와 배는 참 귀했습니다.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양껏 사 먹을 수 있는 형편들은 아니었지요. 그러다 보니 내 눈에는 왠지 귤보다 사과나 배가 더 고급스럽고 품격 있어 보였습니다. 그걸 저 TV 속사람들처럼 우아하게 후식으로, 그것도 매일 먹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었습니다. 웃기지요. 난 과일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은 들이밀어도 잘 안 먹는데 말이지요. 인간은 결핍된 걸 갈망한다더니 그저 그런 과일에도 무심코 욕심을 냈었습니다. 저는.


요즘은 사시사철 어느 한 계절도 빠지지 않고 과일이 주변에 넘쳐납니다. 우리 땅에서 나는 것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올 수 있는 과일이란 과일은 다 들어옵니다. 생과일에서부터 냉동된 것까지. 우리는 앉은자리에서 손만 뻗으면 입맛대로 골라먹을 수 있게 됐지요. 그래서 그런지 먹는 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도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키워 낼 수 있었던 과일들이

이제는 기계에서 그냥 뚝딱 찍어낸 공산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들에게 우리가 하는 말은 그저 맛이 ‘있다, 없다’ 하는 품평뿐이고요.


세월이 흐르면서 귤의 종류도 셀 수없이 다양해졌습니다.

또한 하우스 재배를 통해 품종을 달리하며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어땠을까요. 나와 눈을 맞췄던 꽃잎들이 만들어낸 귤들은 찬바람이 불고 첫눈이 올 때까지도 가지에 내내 매달려 있어야 했습니다. 공터에 불을 피워 놓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귤을 따던 것이 생각납니다. 비록 온도계의 수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은 없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날카로웠던지요.

꽁꽁 얼어 얼얼해질 때까지도 가지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귤이나 그걸 따 내야 하는 나는 참.

그러고 보니 귤은, 여린 속을 가졌으되 강건한 섬의 비바리를 닮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푸른 하늘과 맞닿을 듯한 초록들 사이에서 귤들이 쑥쑥 커나가고 있을 겁니다. 그네들이 영글어가는 만큼 우리의 삶도 푹푹 익어가고 그날이 그날인 것 같은 날들을 아웅다웅 거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종종

나의 욕심이 그득하여 방안이 꽉 차게 물건이 많아지면, 무심한 듯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꽃잎들을 떨궈내던 그 초록들을 생각합니다. 끝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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