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주인 8
창가에 서서 그의 흔적을 찾던 나는 하얗게 질려갔다.
“오호, 이 정도는 하니까 그래도 신경 써주네.”
익숙하고 불길한 목소리에 천천히 몸을 돌려보니 거기 S가 서 있었다. 분명 그가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하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학원 건물에는 떨어지다 붙잡을 만한 발코니나 난간도 없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착지 연습 많이 했거든.
네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
S는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쏟아냈다. 줄곧 냉랭했던 나를 흔들기 위해 교실 창문 바로 아랫집 옥상으로 몇 주 동안 뛰어내리는 연습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크게 동요하는 것을 보며, 목표를 달성했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나는 경악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진심으로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네가 사람 새끼가 아니구나.”
나는 S에게 달려들어 그를 밀치고 주먹으로 때렸다. 그제야 조금 전의 상황이 머릿속에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친구들은 모두 그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정말 떨어졌다면 누군가는 학원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선 자리에서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119에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다. 똘똘 뭉쳐 사람 목숨을 걸고 나를 기만했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그랬지, 처음부터 다 한통속이었지.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계속 그에게 물건을 집어던졌다. 그는 피하지 않고 낄낄거렸다. 그의 웃음에 속이 더 뒤집혔다.
“야, 이 미친놈아. 차라리 네가 죽었으면 더 좋았을 거야.”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더는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3월부터 괴롭힘을 당해왔는데 더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반을 바꿔주실 수 없을까요?”
도와달라는 말에 그렇게 큰 용기가 필요한지 몰랐다. 나는 자꾸 비어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더듬거리며 그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했다.
“S는 제가 좋아서 그런 거라고 하는데…”
“사내자식들이 그럴 수도 있어. 좋다고 그러는 건데, 좀 이해하고 넘어가 봐. 다 한때야.”
선생님의 말에 속이 다시 쿵하고 내려앉았다. 좋아하면 잘해줘야지 왜 괴롭히는 걸까. 그게 정상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혀와 목구멍이 뻣뻣하게 굳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고서야 겨우 다음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저는 S에게 아무 감정이 없어요. 지난 주말에는 S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습니다.”
선생님도 매우 놀라신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신 후, 단단히 주의를 줄 테니까 끝까지 마무리를 잘해보자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학원 선생님으로서는 그 정도 선에서 나를 다독이는 것이 최선이었으리라. 수능이 코앞이었다.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교실로 오신 선생님은 창문을 하나하나 걸어 잠그셨다. 창문을 여는 것은 금지되었다. S는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로 갔다.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그 후로는 내 주변으로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았다. 눈앞에서 그가 사라졌어도 안도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내가 믿던 세상은 무너져 어느 곳도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닫힌 창문 너머로, 그가 미리 살길을 마련해 둔 채 뛰어내리던 장면이 끝없이 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