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란 Jun 17. 2024

연체료 납부 완료

많이 바빴던 상반기, 이제 드디어 방학. 마음에 걸린 불편함은 연체료처럼 끈질겼고 나는 다만 단단해지려고 애썼다. 생각이 너무 많아 오랫동안 오히려 한 자도 쓰지 못했다.


밥해먹이고 보내고 공부하다가 뛰어나갔다. 인근 병설유치원에서 놀이지원 봉사활동 2시간 하고 나면 셋째가 돌봄 교실 마칠 때까지 한 시간반이 남았다.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운동장 바닥에 자리를 깔고 벤치에 책을 펴고 또 공부. 네 과목인데도 버거웠다.


공부는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나를 볶아대면 이대로 등이 굽어 콩벌레로 변하는 상상을 했다.

소설 교수님, 시 교수님은 언어로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른 세상에선 가능성만 추구한다고 욕을 한다. 이제 혼자서 밥은 떠먹을 만큼 키워놓고 세상으로 나온 지 겨우 1년 반인데도 그런 말들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어쩌라고?! 오 드디어 연체료 납부 완료.


목덜미가 뜨거워진다 싶을 때쯤 셋째가 운동장으로 나오고 집으로 돌아가면 넷째가 올 시간. 다시 먹이고 씻기고 이것저것 하면 저녁이 되고, 눈이 너무 침침해 도저히 밤의 고요를 차지할 수가 없었으므로, 누웠다. 나이 탓인지 비우려 하지 않아도 머리가 비워진다. 새벽에 눈이 떠지는 날은 새벽 공부.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 다시 반복. 반복된 일상이 뼈대가 되어준다는 것을 나는 믿었다.


떼어내도 어디에선가 또 붙어온 밥풀은 우울의 몸 같다. 밥은 일상이면서 생명이지만, 이상하게 몸에 붙은 밥풀만은 눈물방울 같고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쉬게 된다. 그래서,스스로 하게 해야 하지만 오늘도 유치원 아이들 옷에 붙은 밥풀을 부지런히 떼주었다. 가끔, 아주 가끔은 누가 떼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이번 학기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하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성적표가 나오면 이마에 붙이고 등에는 ‘아이들 밥 먹이고 집 청소도 했음‘이라고 써붙여 빙글빙글 돌아라도 볼까나,

물론 집안에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매거진의 이전글 불화전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