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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말해?

화요일

by 도란

왜 그렇게 말해?


이 한 마디를 못해서 화병이 난 사람, 나야 나… 순간적인 화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 -이라고 쓰면서도 우습다- 이 어렵다 보니 점차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답답해서 책도 많이 찾아봤다. 단호하게, 목소리톤을 높이지 말고, 핵심만, 감정적이지 않게, 자신이 불편했던 부분을 전달하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습디다. 그만하시라고 해도 그만 둘 사람이 아닌 것 같으면 말 꺼내는 것이 더 힘들다. 흥, 더러워서 피하고 말지.


어른이 위독하다고 하셨을 때 놀랍게도, 녹음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 여자를 장례식에서 만날 것이므로. 무슨 말을 어떻게 바꿔 나를 곤경에 빠뜨릴지 모르니 이번에는 반드시 대비하리라. 녹음기를 고르면서 내가 정말 나쁜 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크기가 작고 성능까지 좋은 ‘믿음직한’ 녹음기는 무려 179,000원이었고, 179,000원은 그 여자가 우리 아이들을 지칭한 금액보다도 적었지만, 쉽게 지불할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지칭한 금액'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생각하겠지만, 그 여자는 우리 아이들을 ‘20만 원짜리들’이라고 불렀다. 당시 양육 수당이 한 달에 20만 원이었기 때문에 생긴 호칭이다. 본인이 운영하는 보육기관도 아이 한 명당 일정액의 지원금이 나라에서 지급되었는데도(그래서 운영이 가능했을 것임에도), 자기가 아이들 키울 때는 양육수당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불렀다. 보통의 사람들이 조카를 어떻게 부르는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는 생각에 차마 녹음기는 구입하지 못했다. 장례식 마지막날 그 여자가 앞으로는 서로 교류하며 잘 지내고 싶다고 했다. 망언의 세월을 혼자서 뒤로 하고 갑자기? ‘어이없음’은 ‘말문'의 자물쇠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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