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어머니’로 시작하는 문자와 함께 깨진 교실 유리창 사진을 보니 말문이 막힌다. 리코더를 손에 쥐고 흔들던 둘째 녀석이 그걸 날려버렸다니.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로 달려가, 선생님께 상황 설명을 듣고 사과드린 뒤, 재발 방지를 위해 가정에서도 지도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민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사과할 일을 자꾸 만드니 화가 먼저 날 때도 있다. 깨진 유리창 아래에서 고개 숙이고 선생님 말씀을 듣던 엄마를 보며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위인전에는 이런 상황에서 반성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구) 말썽꾸러기들이 가득하던데, 우리 아들은 그런 쪽은 아닌 듯하다. 분위기 파악은커녕 반대쪽 문에서 두더지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넣었다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이를 차분하게 만들려면 뿌리채소를 먹이라는 소문을 듣고 이유식 때부터 당근, 연근, 우엉을 부지런히 먹였는데, 양이 부족했나 보다. 차분한 아이는 못 되고 채소를 잘 먹는 아이가 되었다. 사실 나도 어릴 적 가만히 못 있고 말이 많던 아이였던 걸 슬그머니 인정해야겠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고 변명해 본다.) 나는 과거를 누설하지 않았지만, DNA는 역시 정직했다.
한 반에 50명이 넘던 시절, 선생님께 나 같은 아이를 수용할 여유가 있었을 리 없다. 결국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 입에 투명테이프를 붙이기도 했다. 오늘 깨진 유리창에 임시로 붙어 있는 종이와 투명테이프를 보니 그때 생각이 났다.
벌써 학년이 끝나가는데도 아들의 산만함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고, 나는 여전히 죄송하다는 말 외에는 떠올릴 말이 없다. 매일 이야기해도 변화가 없으니 조금 지친다. 오히려 선생님이 나보다 아들을 더 믿어주시는 듯하다. 복도 많지. 그러니까, 아들아, 생각 좀 하고 행동해 다오. 우리, 평화롭게 겨울방학을 맞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