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사이트] 디지털 콘텐츠에서 우정의 확장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중심으로

by 도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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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사랑은 언제나 서사의 중심에 있다. 인간 감정의 정점인 사랑은 갈등과 화해를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에 비해 우정은 또래 집단 내의 친밀감에 집중해, 사랑만큼 복잡하거나 무게감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정이 인물 간 감정선에서 점차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올해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는 우정이 사랑만큼이나 복합적인 감정의 층위를 지니며 주요 서사를 이끌었다. 이에 기존의 영상 기반 디지털 콘텐츠에서 우정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은중과 상연〉이 우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색깔로 보는 사랑과 우정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사랑과 우정을 색채에 빗대어 정의하고자 한다. 사랑은 선명한 ‘새빨간 색’으로, 우정은 다양한 결을 지닌 ‘스펙트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새빨간 사랑’은 러시아의 혁명가 콜론타이의 소설 『바실리사 말리기나Vasilisa Malygina』(1923)가 1927년 미국에서 『붉은 사랑(Red Love)』이라는 제목으로 영역된 데에서 유래된 ‘붉은 연애’와는 구분된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이상적인 사랑은 빨갛다. 새빨간 사랑은 에로티시즘적인 애정이 들끓고 그 마음 하나로 흘러넘치는 관계로 표현된다. 감정적 순결에 대한 환상에 근간을 두며 의심, 연민, 죄책감 따위의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사랑이다. 감정의 순수성은 ‘얼마나 새빨간 사랑인가’의 척도가 된다.


하지만 하나의 감정으로 가득해 강렬하고 순결한 사랑은 여타의 감정이 섞이면 쉽게 훼손된다. 우리는 여러 작품에서 의심이나 동정, 죄책감 등의 감정이 섞여 새빨간 사랑에 기반한 관계가 망가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새빨간 사랑의 강한 존재감은 그 반대 사례로도 확인할 수 있다. 연인이 아닌 사이에 ‘빨간 사랑’이 섞이고, 인물들이 자각하기 시작하면 이전의 관계는 파괴되어 사랑을 자각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반면, 우정은 ‘빨강 외의 사랑’으로, 스펙트럼에 가깝다. 우정은 여러 감정이 얽혀있어도 개의치 않으며, 양가감정을 품고도 유지되는 포용력을 지닌다. 우정은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며 복합적인 관계성을 표현하기에 유용하다. 활용도가 높은 우정은 감정 카테고리로서의 ‘사랑’을 대표할 만큼 상징성을 갖지는 않지만, 사랑의 의미를 더 넓고 깊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사랑과 우정

그동안 미디어에서는 우정보다 사랑을 심도 있게 다뤘다. 우정을 다룰 때는 ‘사랑이 아님’을 명확히 했고, 사랑과 우정이 함께 나오는 경우 중심부 감정과 주변부 감정으로 구분했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문지웅과 지승완은 이성 간의 우정을 보여준다. 문지웅은 “지승완과 무슨 사이냐”는 질문에 “불알친구”라고 말한다. 이에 상대가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자 그는 “승완이는 종교”라고 정의한다. 즉, 동성 친구와의 오랜 우정을 표현할 때 쓰는 ‘불알친구’와 종교적 절대자인 ‘신’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에로티시즘적 사랑과 구분했다.


또한, 사랑과 우정이 한 작품에 등장할 때는 중심부 감정과 주변부 감정으로 계층이 발생하고, 우정보다 사랑이 우선시 된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구준표는 ‘F4 사이 우정’과 ‘금잔디와의 사랑’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때 F4의 멤버 윤지후와 금잔디 사이에서 사랑의 기류를 감지한 구준표는 윤지후와의 우정을 저버린다. 윤지후를 F4의 멤버에서 제명하고, 금잔디를 사이에 두고 대결을 펼치는 식이다. 이후 구준표가 금잔디의 사랑을 얻고 윤지후가 이를 받아들이고 나서야 둘의 우정이 회복된다.


<은중과 상연>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우정

최근 디지털 콘텐츠에서는 우정을 보다 복합적인 감정으로 다루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경향을 <은중과 상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원망과 선망 사이’. 이 표현은 <은중과 상연>의 핵심 관계를 관통한다. 11살에 시작된 은중과 상연의 우정은 동경, 질투, 애증이 뒤섞여 둘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이들의 관계는 또래 집단 내 동질감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은중은 상연이 가지고 싶은 걸 가졌고, 상연은 은중이 가지지 못한 걸 가졌다. 은중은 상연이 특히나 아꼈던 윤현숙, 천상학, 김상학의 사랑을 금세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상연은 평범한 은중과 달리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부터 필름 현상까지 다재다능했다. 박탈감 위에 애정이 쌓여 만들어진 이들의 우정은 입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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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얘(상연)는 못 하는 게 없었어요. 라이벌 의식은 뭔가 이기고 싶을 때 생기는 거 아니에요? 난 부럽기만 했는데. 이기려고 하기엔...”(은중)

“그때였다, 영원히 이 아이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예감한 건. 모두가 은중이를 좋아했다. 미웠다. 내가 가진 걸로는 엄마를 기쁘게 할 수 없었으므로. 오빠를 웃게 할 수 없었으므로.”(상연)


은중과 상연이 불순물 섞인 우정을 쌓았다면, 은중과 김상학은 불순물 없는 ‘새빨간 사랑’을 했다. 그러나 상학이 상연에게 연민이 섞인 사랑을 느끼면서 은중과 상학의 사랑에는 의심이 끼어든다. 빨간 사랑은 순결하고 이상적이지만, 그만큼 작은 오점에도 취약하다. 사랑에 의심이 섞이자, 은중은 상학에게 이별을 고한다.


인물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과 우정의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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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배(상학)를 너무 좋아했나 봐. 더는 좋아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좋아했나 봐. 우리 이제 옛날로 못 돌아가.”(은중)

“상연아, 너 나 불편하지. 나도 아직 너 불편해. 그렇다고 너 나 안 볼 거야?”(은중)


은중에게 중심부 감정은 우정이다. 불순물 섞인 우정이 순결한 사랑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은중을 휘두른다. 은중은 상연의 손을 놓은 적이 없으며, 떠났던 상연이 다시 손을 내밀 때마다 그것을 뿌리치지 못한다. 은중을 무력화하는 또 다른 존재는 상연의 어머니인 ‘윤현숙’이다. 윤현숙을 언급하는 상연의 불순한 의도가 빤히 보여도 은중은 어김없이 흔들린다.


반면, 새빨간 사랑을 나누었던 상학과의 관계에서는 늘 은중이 주도권을 잡는다. 의심이 섞여 사랑이 훼손되었음을 깨달은 은중은 곧바로 상학과 이별했다. 수년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도 상학은 은중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상연에게 중심부 감정은 우정이 아닌 사랑이었다. 연인 사이인 은중과 상학 사이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어울리던 상연은 상학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점점 커지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친다. 이후 상연은 은중이 아닌 상학을 선택한다. 상학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은중이 아닌 자신도 봐달라고 매달린다. 하지만 상연은 어떠한 말로도 상학을 설득하지 못한다. 상학 또한 은중과의 사랑이 중심부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인물에 따라 중심부 감정을 다르게 제시함으로써, 어느 한 감정을 절대적인 중심부 감정으로 단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즉, 사랑과 우정 사이의 승패는 공식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물 간 관계성과 감정을 어떻게 구축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OUTRO

“고도로 발달한 우정은 사랑과 구분할 수 없다.” 현실에서 우리의 감정을 풍성하게 만드는 관계 중 사랑과 우정은 큰 축을 이룬다. 그리고 최근에는 현실과 미디어 속 우정의 깊이 차이를 좁히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기존 서사 구조가 담아내지 못했던 감정의 층위를 드러내, 이야기를 다채롭게 확장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앞으로 어떤 관계와 감정의 서사를 담은 작품이 등장할지 기대되는 바이다.



참고문헌

노지승, 「‘붉은 사랑’이라는 성 각본(Sexual Script)과 여성의 정서적 주권 -여성 사회주의자 작가의 자기 서사를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제88호, 2022, 149-181쪽.

권도은, 정지현(연출). <스물다섯 스물하나>. 2화. 스튜디오드래곤, 화앤담픽쳐스. 2022.

송혜진, 조영민(연출). <은중과 상연>. 7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2025.

송혜진, 조영민(연출). <은중과 상연>. 14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2025.

송혜진, 조영민(연출). <은중과 상연>. 8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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