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열 세 번째 주제
그런 날이 있다.
자꾸만 먹어도 공허한 느낌이 들고
곁에 있어도 외로운 느낌이 들고
온전히 감정이 채워지지 않는 날이 있다.
사랑을 해도 완벽히 사랑받지 못하는 기분을
그 야속한 마음을 너는 모른다.
나는 그저 당신의 시간을 보내는
도구로써의 사랑.
외로울 때면 꺼내어 보고
바쁠 때면 넣어 두는
그런 도구로써의 사람.
찾아지지 않을 때에의 내 심정은
공허함과 불안함으로 가득차올라
이내 네 품을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한다.
떠날 채비를 하면서도
네가 아쉬워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날을 세워 미리 상처받게 하고나서야
네게로 간다.
네 손에 쥐어진 것들 만큼이나
나는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아니 도구로써라도 아껴줄 겨를조차 없었는지.
그런,
도구로써의 사랑.
-Ram
개념적인 자리에 끼워져 있는 것처럼 되어가는 것 같아 슬프다.
에리히프롬의 이야기처럼 원래 인간들은 모두 저런 기분을 느끼는 것인지,
내가 저런 기분을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너와 나 사이에서도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느낀다.
내가 있는 자리가 정말 나만을 위한 자리인지 의아할 때가 있다.
나는 그냥 자리에 존재하는 것인지, 내가 자리 위에 존재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를 잃어버리기 싫어 소리없이 아우성은 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나를 잃어버리기 싫어 괜한 반항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따뜻한 말 한 마디, 따뜻한 포옹 한 번이 그립지만 원한다고 말을 꺼내지 않는다.
말을 먼저 하게 되면 그저 내가 시켜서,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서 하는 것이기에 입을 다문다.
혼란스럽다. 그저 나 혼자만의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날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물러질수록 그 사이에 나를 지치게 하는 이물질들이 낀다.
이런 상태에서 나는 내 마음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할지 고민하지만
고민하는 그 자체에 버거움을 느끼며 그냥 잠이 든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나는 나에게 뾰족한 답을 내려줄 수가 없다.
그 답을 왜 내려줄 수 없냐고 내게 반문하면 나는 나에게 미안해져 반문할 수도 없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랑과 애정과 관심이 정말 많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쉽사리 말로 내뱉다가 너의 마음까지 서운하게 할까봐 입을 다문다.
현명한 선택과 방법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다. 모르겠다.
이런 시간이 늘어가면서 웃음이 사라질 것만 같아 겁이 난다.
-Hee
우리는 각자의 프레임 속에서 살아간다.
누구나 프레임은 필요하다.
매번 한번 했던 생각을 반복하기엔 우리가 판단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프레임이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 사이에 있는 누군가가 꺼내놓은 이야기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프레임을 알아야만 한다.
어떤이는 자기식대로 생각하고, 자기식대로 판단하며, 자기식대로 행동한다.
어떤이는 이사람 저사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판단을 번복하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프레임이 없는 사람도 문제지만, 자기 프레임 밖에 모르는 사람도 문제다.
대화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완충지대 같은 것은 아닐까? 이 완충지대 사이에서는 때때로 꽃이 피어나기도 하고, 때때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황량함이 존재하기도 한다.
대화도 글쓰기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도구일 뿐,
우리는 결국 서로를 원한다.
더 많은 이해를 원한다.
믿음, 의리, 사랑, 그리움 그 충만한 감정들이 소중하다.
그래서 언제나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사이의 소중함들이 필요하다.
완충지대를 함께 나누며 이해하고 닮아가는 우리가 필요하다.
... 필요한걸까?
-Cheol
오래된 필름 카메라 하나를 사왔다. 서울에 간 김에 구경이나 하러 상가에 들렀다가 덜컥 집어왔다. 집에 멀쩡한 카메라가 잘 있는데도 이미 단종된 지 오래인 필름 카메라를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란 핑계로 사왔다. 그래서 요 며칠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었던 때처럼 계속해서 설렌다. 마땅히 찍고싶은 것도 없으면서 계속 만지작거리고 어디를 가든 꼬박꼬박 잘 챙겨서 다닌다. 단단한 모양새도 셔터음도 그리고 손에 쥐었을 때 느낌까지도 마음에 꼭 들어 조금 시들했던 사진을 앞으로는 훨씬 더 열심히 찍을 계획이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취미를 꾸준히 즐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한때는 매일같이 소중히 품고 다녔던 물건이 집 안 구석에서 먼지덮인 채 놓여진 신세를 보면 마음이 부끄러워 쓰라리다. 좀 잘 살아보자고 해왔던 것들이 종종 이렇게 나를 갉아먹는다. 이제는 취미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진 것들을 마음 편히 놓을 수가 없어서, 아주 떼어놓기가 싫어서 그렇다. 그래도 이번처럼 마음에 딱 들어맞는 도구들을 얻게되면 또 얼마간은 의욕이 넘치곤 한다. 계획에 없던 지출에 허덕이면서도 아주 후회스럽지만은 않은 이유랄까.
-Ho
2016년 3월 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