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열 네 번째 주제
이제야 막 고등학생이 된 딸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새학기의 설렘과 부푼 마음으로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내민 종이 봉투에 새 옷이 들어있었던 것이 이유였다.
그녀가 어떠한 마음으로 새 옷을 사왔는지 모를리 없던 아이였지만
옷을 풀어보고는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색이며 디자인
그리고 상응하지 않는 가격표가 덜렁 떨어지자
덜컥 화가 났다.
이 가격이면 더 예쁜 것을 샀을 텐데
괜히 엄마는 나서서 이런 옷을 사왔어
온갖 짜증을 쏟아 부으며 화를 냈다.
밝게 웃을 미소를 기대하며 건네었던 엄마의 손이
갈 곳을 잃어 희미하게 방황했고
야단을 쳐야 할 지, 미안해야 할 지 영문 모를 감정에
그녀도 서운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래, 네게 다시는 옷가지며 어떠한 것도
내 손길을 거쳐 사다 주지 않으리라
다그치고 야단치며 속상한 마음을 감췄다.
고마움을 모르는 아이로 자라지 않게 하려고
너를 풍족하지 않게 부족해도 감사하도록 키우려는 것이
나의 욕심일 뿐이었나
네게 전해진 것은 한 다발의 고집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
슬픔으로 들썩이는 아이의 어깨를
먼저 쉬이 감싸안지 못했던 것은
나 또한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었기 때문에
쓰린 마음으로 네 속상함을 달랠 용기가 없었다.
나의 고집 안에 너를 가두어 키워서
너를 속상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걱정과 슬픔으로 차오르는 감정에 복받쳐 올라
속으로만 슬픔을 몇번이고 삼켰는지 모른다.
그날 밤은 유난히도 길었단다.
다음 날 아침 미안한 마음을 건네는 네 쪽지를 읽기 전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뒤척이며 네 미래를 그렸던지.
그렇게 엄마와 딸이 되는 길을
너도 나도, 조금씩 걷는 구나.
-Ram
1.
선택에 기로에서 내 고집대로 행동을 하지 않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가봐도 약간 무리한다고 싶을 정도인 순간에서도
나는 내 고집대로 행동했다.
수많은 고집들 중에 아직 끝나지 않는 고집들이 있다.
아직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은근하게, 또는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부린 고집들이
또다시 나를 만들었고, 그런 내가 다시 고집을 부렸다.
고집이 곧 내가 되어 고집보다 더 단단해진 그 무엇이 되었다.
옳은 고집, 옳지 않은 고집이 있을까.
고집이 곧 그 사람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그 사람의 온 우주를 토대로 고집이란 빙산의 일각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실 고집을 부리는 그들을 좋아한다.
애써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는 그들을 좋아한다.
그 방식이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현실이지만,
나는 그들의 과정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사랑한다.
누군가에겐 고집불통이라 비춰지는 그들의 모습이지만,
그들에겐 힘겹게 내세우는, 힘겹게 주장하는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2.
사랑도 고집을 부릴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으로 고집을 부릴 수 있다.
어쩌면 사랑이 곧 고집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끊임없이 마음을 주고, 관심을 주고, 애정을 준다는 자체가
바로 고집일 수 있다.
고집을 꺾는 그 순간, 마음도 함께 꺾일 수 있다.
고집이 곧 사랑이 되고, 사랑이 곧 고집이 되고.
사랑이 곧 고집이 되고, 고집이 곧 사랑이 되고.
전제조건이라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고집이어야 오랜시간동안 고집을 부릴 수 있지 않을까.
3.
자신만의 감성을 지켜나가는 것도 고집이다.
그 고집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영리하게 표현해 나가는 사람들이 좋다.
그런 그들을 깊이 사랑한다.
-Hee
“굳이 고집을 피워야겠니?”
엄함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하신다.
내가 있던 그 집에서 나는 갖은 무시를 당해야만 했다.
그들이 나를 이용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에게 선택권이란 것은 보통의 경우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 화가 났을 때, 나는 연관성이 있든 없든 비난의 대상으로 화풀이 상대가 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매번 그러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내가 자초한 일이라며 나에게 반성을 촉구했다. 나는 제법 영리한 편이라 아무리 내가 눈치가 없다고 해도 내가 내리는 판단이 틀리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저 여전히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폭력이었다.
그러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구조 안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탈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출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고,
출가를 할 때 내게 필요한 도움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첫 한달 간의 생활비라든지, 방세라든지 나에게 꼭 필요한 도움들만 요청해보았지만,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들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출가를 하던 날 아침.
일주일치 생필품을 싸멘 가방을 둘러메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식탁에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인기척에 방문을 열고 나오신 어머니가 나의 모습을 아무런 표정없이 쳐다보신다.
컵라면을 끓여먹고 집을 나서며 인사 드리는 나에게
밥이라도 챙겨먹으라며 어머니께서는 무덤덤하게 10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나 역시 무덤덤하게 그 10만원을 받아들었다.
그렇게 10만원만을 손에 쥐고, 내 모든 것이 담긴 가방을 둘러멘 채
아무것도 없는 서울로 올라왔다.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일당을 주는 일자리들을 찾아 헤메이고
베개 대신 가방을 베고, 이불 대신 옷가지를 두르고 자던
하루살이의 순간으로부터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0만원으로 버틴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들을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에 대한 숙제가 남아있다.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구태여 생각을 이어가지는 않는다.
-Cheol
요즘들어 어느 때보다 능동적으로 나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해라는 말은 조금 거창하니까 지난 날 내 마음과 감정을 떠올리고 왜 그랬던가, 그 이유를 속 좁게 써내린다고 해야겠다.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지내온 기억을 기어코 뒤엎어 단단하게 딱지앉은 자리를 소독하는 일이다. 쓰라리지만, 곪은 자리가 터지기 전에,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사람이 해야 할 불가피한 일을 요즘들어 활발히 한다.
돌아보면 나의 움츠러든 마음들은 모두 강박이나 나약함에 이어져있다. 수동적인 사람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최선을 내면에 으슥히 규정해두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안달하고 부끄러워 했다. 늘 잘난 사람이고 싶으면서도 그게 잘 안 되니까, 내가 해왔던 일들은 숨거나 감추는 일이었다. ‘사람 죽으란 법은 없다고,’를 자주 읊조리는 내가 한결같이 잘 하는 일이란 고작 그런 일이다.
주변에 산재한 불확실한 일들에서 떠나오고 마음대로 조몰락거릴 수 없는 일들은 피해버리고, 완벽할 수 없는 일들을 애써 외면해오다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일일랑 모조리 미뤄버린다. 사람들은 가끔 그런 내 모습에 쓸데없이 고집이 세다고 불평했다. 우유부단함에 몸을 실어 불안을 표류하는 모습, 그 알량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그렇게 애처로운 고집이 됐다.
거센 물살에 일렁이는 개인들은 모두 한 두 차례씩 무력함을 겪는다. 거대한 수세에 전복사고라도 겪은 몇몇은 헤쳐 나아가기를 포기하고 그저 닥쳐올 사고의 뒷수습이나 힘없이 늘어져 상상한다. 조심스런 판단도 확신에 찬 결정도 모두 휩쓸려 나간 뒤 암울함에 휩싸인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그런 것. 그 때는 다들 조금씩은 그렇다며 안도했는데 지금은 오직 나 혼자서만 그런 것 같아 무섭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것도 고집일 수 있다니. 이건 정말이지 표독스럽게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고집불통보다도 못한 게 아닌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히 해나가는 것. 젊잖게 나의 길을 가는 것. 당분간은 나를 구구절절 절감할 계획이다. 지금 내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태도가 어느새 낯설어지길 바라면서. 나도 좀 고집다운 고집을 가져봐야지.
-Ho
2016년 3월 1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