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열 여섯 번째 주제
한참을 걷다가 네 기억이 조금 나서
걸음을 멈추었어.
소란했던 주변이
약간의 고요함으로 젖어들고
온전히 네 생각으로 잠시 발걸음을 늦추면
곳곳에 스며든 풀내음이라던가
바람이 흐르는 소리같은 것들이
네 기억을 더 짙은 그리움으로 물들이곤 해.
네 얼굴을 기억하려 애쓰다가
이내 꿈같은 상상에서 깨어나면
나 혼자만이 이 소란에서
멈추어 있었다는 사실에 서러움이 쏟아져.
우리는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의 눈빛을 한시도 놓치지 않으려
두 손을 꼭 잡았고
소란한 공기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마음을 전하곤 했는데,
그때의 기억은
혼자가 된 지금에와서도
자꾸만 너를 떠올리는 스위치가 되어
지금은 나 혼자만이
이 눈빛과 마음을 어디에도 보내지 못한채
속으로만 움켜 쥐고 운다.
소란스러운 거리에
나 혼자만이 고요한 추억과
아득히도 멀어진 네 기억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 밖에.
-Ram
1.
뜬금없이 그 노래를 들어보라고 권유했다.
정말 가사를 되뇌이며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네가 평소에 잘 떠오르지도 않았고,
굳이 생각하려 하지도 않았는데,
그 노래를 듣자마자 네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뜬금없이 그 노래를 들어보라고 권유했다.
2.
속시끄러운 날들이 잦았다.
우스갯소리로 속이 시끄럽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웃어 넘길 일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너무나 잘 알아서
시끄러운 채로
그렇게
방치했다.
방치를 했다.
3.
그 날이 떠오른다.
다음날 옷을 맞춰입고 멀리도 아닌
가까운 곳을 가기로 했던 날.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꾸만 그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너무나도 오래되어버린,
12년 전 이야기다.
4.
어쩌면 아주 어색할 때
참으로 소란스러운 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5.
엄청난 애정을 느낄 때
행복함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Hee
언제부터 나의 마음은 이리도 소란스러웠던 것일까
나 답게 살리라 다짐하였지만
나의 마음이 소란스러웠던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잃어가고 았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언제부터 나는 의미 없이 들떠있었던 것일까
너라는 사람을 알고부터 그랬던 것일까?
무엇에 홀렸던 것일까
그저 허황된 것들 뿐이었단 사실을
결국 기다리는 시간도 모두 의미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는
내 마음 속 너의 머리결을 쓰다듬어본다.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 곳에 이제 너는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감싸안는다.
-Cheol
지켜내야 할지, 차라리 없어지는 게 더 나을지.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없애는 쪽을 선택했다. 1년을 넘게 이어온 독서모임이 이제는 정말로 사라지는 것이다. 자꾸만 고꾸라지려는 것을 붙잡는 동안 애정이 많이 들었지만 독서없는 독서모임을 지속할 열정이 더는 남아있지 않다. 내가 만들기야 했지만 이제는 나만의 것이 아닌 모임이라 한참을 망설이다 이제서야 마뜩한 결정을 내렸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다독이는 편찮음도, 낯선 이들의 친목을 위해 늦은 밤까지 술을 들이키는 일도 더는 없다.
함께 할 네다섯 사람이 없어 안절부절못하던 모임을 지금은 서른명이 함께 한다. 실제로 모이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지만 덩치가 많이 불어난 모임은 어느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나 혼란스럽다. 매주 정해진 장소에 모여 한 시간 동안 각자 읽고싶은 책을 읽는 것, 겨우 한 시간일 뿐이지만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어렵다. 책읽는 습관을 들이고싶은 마음보다 평소에도 책을 가까이 하는, 차분할 것 같은 사람을 사귀고싶은 마음이 더 큰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슬프게도,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인 모임에서 말 한 마디 없이 이어지는 시간은 번번히 아득하고 조잡한 마음들을 차마 말릴 수 없는 나는 자주 비참했다.
내 소소한 바람이 젊은 혈기들의 요란함으로 뒤덮이고 덤덤한 가운데 열렬한 마음이 식었다. 열성으로 도와준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이 하나 둘 떠난 뒤에는 나도 어지간히 얼얼한 기분이라 어쩔 줄을 모르겠다. 객지에 홀로 사는 외로움에 큰 위안이 되어준 모임을 끝내는 마음이 떠나가지 못해 안달했던 애인과 헤어지던 날처럼 아리고, 유감스럽게 후련하다. 소란스런 시절이 끝났다. 어쩐지 저지르고 도망치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친구의 말처럼, 버거우면 내려놓을 수 밖에.
-Ho
2016년 3월 2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