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열 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이맘때 즈음 우리가 함께 걸었던

공기가 얼마나 따스했는지

기억할런지.


너는 이토록 아련한 흔적으로 남아

낙엽이 바스라지는 소리에도

금방이라도 너를 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함께 오르던 길목마다

배어있는 향기와

스며드는 풀내음 같은 것들을

왜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을까


네가 왜 이 산을 사랑하지 못했는지,

이제는 안다.


나는 언제든지 산을 정복하려 했고

너는 그런 나를 묵묵히 따르며

한발짝 물러선 거리에서

느리고 또 느리게 따라 올라오곤 했다.


우리는 같은 산을 오르면서도

나는 줄곧 정상을 향했고

너는 내가 스친 풍경 속을 헤메이고 있었다.


그립고도 아련한 사람.



-Ram


1.

"왜 이렇게 빨리가?"

내가 등산할 때 마다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옆에 경치도 좀 보고, 힘드니까 조금씩 쉬면서, 쉬엄쉬엄 올라가면 되지 않냐고 내게 말한다.

난 정말 산을 최대한 내 한계치 내에서 빨리 올라간다.

할 수만 있다면 더 빨리 올라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성격이 급한 탓도 물론 있지만,

내 몸의 근육들을 더 다그쳐서 최대치를 쓰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평소에 운동을 마음껏 할 수 없으니 근육을 더 쓰고 싶은 욕구가 등산을 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 또 등산의 묘미가 있지.

김밥이나 과일 등을 가져가서 정상 부근에서 먹는 재미 때문에도 등산이 좋다.

그리고 하산할 때에는 풀냄새, 흙냄새, 흐르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가 참 좋다.

등산 후 뻐근한 몸을 이끌고 마시는 맥주 한 캔도 최고지.

슬슬 등산을 갈 떄가 되었나보다!


2.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의 북한산을 오른 적이 있다.

미끄러질새라 조마조마하게 땅만 보고 오르니

어느덧 정상이라고 했다.

드디어 정상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름다운 광경이 한가득 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멋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광경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북한산은 어제도, 지금도 잘 있고, 내일도 잘 있겠지.


3.

20살때 엄마와 엄마 친구분들이랑 함께 관악산을 올랐는데,

포스를 신고 올라갔다.

별 탈 없을 줄 알았는데

정상쪽에서 바위를 밟는데 미끄러워서 혼났다.

등산화의 중요성을 일깨운 날이다.

그래서 그 이후에 거금을 주고 등산화를 샀는데,

무겁다.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아무래도 잘 못 산 것 같다.

젠장.


4.

의사선생님은 나보고 등산을 가지 말라고 했다.

내가 너무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면 안되냐고 물어보자,

그럼 혼자서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

정말 나는 등산을 가지 말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보통 의사선생님들이 하는,

'술 담배 하지 마세요.', '밀가루 음식 많이 드시지 마세요.'라는 뉘앙스와

비슷한 말일까?

아직도 모르겠다.



-Hee


1.

나 스스로 판단하건데,

예전에 비해 좋은 글을 쓰는 빈도가 줄어 들었다.


근래들어 쓰는 글들은 대충 쓴 일기마냥

참신하거나 진실되거나 인상깊은 내용이 별로 없다.


어찌보면 외부적으로 내 삶이 그만큼

감정의 풍부함과 멀어졌을지도 모르겠고

나 스스로 어떠한 정체 속에 있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가 바라던 길 위에 간신히 올라와

뚜벅뚜벅 걸어나가면 된다지만


애초에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위기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2.

언제부터였을까?

등산이 좋아졌다.


등산이 하고 싶어졌고,


등산을 좋아하는 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마음도 신체도

나 만큼 건강한 사람.

혹은 나보다 더 건강한 사람.


그래서 서로에게 활력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고

나를 일깨워주고 함께 등반을 즐길줄 아는 사람.


혹은 그저 이런 맘을 이해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Cheol


입관을 끝낸 뒤에 친척들과 야외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무슨 울음이 그렇게 허술해. 울 거면 좀 세게 울지, 그게 뭐야 그게.”

“그러니까 이놈들아, 아버지 살아계실 때 잘 하라는 거야. 알겠어?”


아빠가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여기저기서 평소에도 많이 듣는 말인데, 그 자리에 아빠에게서 직접 그런 말을 들으니까 더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뭔가, 뼈가 있는 말이네요, 고모부.”


친척 형의 말 그대로였다. 나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더 간절해졌다.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은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함께 간 적이 없다. 하기야, 제 때 밥 지어 먹을 돈도 부족한 형편에 여행은 대단한 사치였으니까. 이제는 숨이 좀 트였다지만 한 달에 이틀 쉬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 둘이서 함께 여행을 가기란 여전히 요원하다. 그렇더라도 계속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단순히 내 마음이 떳떳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 가족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유일하다시피 잘 하는 운동이 클라이밍이고 등산이라 산에 같이 가자고 했다. 전에 두분이서 종종 산에 다녀왔던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는 아빠 무릎이 등산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신발장 안 부모님 등산화에는 곰팡이가 피고 먼지가 앉아 있었다. 나는 또 내게 짜증이 나서 입을 꾹 닫아버렸다.

그리고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외로 여행을 갈 테니까 알아서 날짜들 꼭 빼라는 말을 하고 왔다. 지금 당장은 그럴 수가 없으니까, 일단은 집에 자주 내려갈 생각이다. 쉬는 날에 데이트도 하고 다른 자식들처럼 자질구레한 선물을 하고 용돈도 주고. 그래야지.



(118번째 주제)우울


전화로 소식을 전해듣고도 덤덤히 마시던 술을 끝까지 마실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할머니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였을까. 아닌가. 그 때는 덤덤했던 게 아니라 아무런 생각도 하고싶지 않았던 걸까. 허리굽은 노인이 싸늘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떠올리려 해도 도무지 내게 뭐라도 하나 더 먹이고 싶어하는 웃는 얼굴만 어른거려서, 애써 위로하려 경험담을 늘어놓는 친구 말처럼 마음이 불안하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본 게 언제였나, 왜 지난 설에 시골에 내려가지 않았나, 전화 한 통화 할 생각을 왜 못했나, 멍청한 후회를 하고는 잠들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대전에 있는 친척동생을 태워 순천으로 내려갔다.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 말 많은 까불이가 숙연해진 모습을 보니 나도 따라서 착잡해졌다. 이제는 다 커서 1, 2만원 돈은 우스워진 손자에게 매번 꾸깃꾸깃 접힌 지폐를 쥐어주려던 주름진 손, 예쁜 웃음, 그 고마운 마음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저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엄마를 잃은 엄마의 마음도, 눈물을 흘리는 모르는 사람들의 슬픔도 구구절절 다 저렸다. 곧 빈소에 도착했고 얼마 뒤에는 꽃신을 신고 누워계신 할머니를 봤다. 차가운 철판 위에서 얼굴이 몇개의 천으로 덧씌워지고 있었다. 할머니 얼굴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때는 저린 마음들이 모두 통곡이 되었다. 어째선지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속으로는 장의사의 말 한 마디 다음에는 엄청나게 커졌다가 잠시 뒤에는 다시 작아지고 다시 커지기를 반복하는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어설프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그 순간들이 모두 비현실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조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만 선명히 들렸다.


“엄마, 그런데 아침에 빈소 찾다가 알았는데, 나 여태 할머니 이름을 몰랐다?”

“…그럴 수도 있지. 할머니는 할머니니까.”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나는 한편으로 너무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지만 여태 할머니 이름을 모르고 지냈다. 생일은 물론이고. 그걸 새삼 알아차린 순간에 나는 스스로가 너무 상스러워서 질색했다. 내가 이곳에서 슬퍼할 자격이나 있는 걸까 의심스럽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만큼이나 내가 여전히 나밖에 모르는 지독한 사람이란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곤 하지만 나는 전보다도 더 못난 사람이 돼있어서 우울했고 그 다음부터는 내 마음이 가라앉은 이유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인지 그 날의 분위기에 짓눌려서인지 구분할 수 조차 없게 됐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렇게 멍하니 어수선한 3일을 다 보냈다. 몇년만에 만난 사촌 형과 예상 외로 막힘없는 대화를 했고 여전히 꼴값 떠는 외숙모와 말다툼을 했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곯아 떨어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할아버지가 내 머리 위에서 나를 지켜봐주신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이번에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만약에 계셔도 다른 사람에게 가시라고 속으로 말했다. ‘나 같은 것도 손자라고 돌봐주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할머니.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할테니까 할머니도 꼭 그렇게 해.’



-Ho


2016년 4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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