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스물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마음이 닳는다.


네가 없는 자리에도

나는 너의 그림자만으로도

끙끙 앓았다.


너는 알까.


닿을 듯 닿지 못해

온 신경을 꿰뚫는 시선 속에

나는 애처롭게 숨쉬고 있었단 것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속에서

홀로 문드러진 가슴으로

나는 그렇게 매일을 조용히 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루를 걸으면서

나는 몇 번을 떨었는지 모른다.


서러움에 몸서리 치던

그런 나날들을

너는 정말 알까.



-Ram


1.

"이런 내 희생은 누가 책임져줘요?"

"그래도 그 목표를 이룬다면 그 다음 사람들에겐 편하지 않을까?"

"아니, 그건 알겠는데. 그 목표를 이루는 시간이 짧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죠..

그 시간동안 내가 하는 희생과 스트레스 등은 누가 보상해줘요?"

"물론 그건 누가 보상해줄 수는 없지만 그 목표를 생각하면 뭔가 힘이나지 않니?"

"그럼 그 목표를 이루면요?"

"목표를 이루면 우리도 편해지겠지."

"그렇게 편해지고나면 뭐가 좋아요?"

"편해지면 지금과 같은 고생은 안하겠지?"

"그래도 지금의 내 나이, 내 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잖아요."

"그건 그렇지."

"난 그게 너무 아까워요.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요."

"그래도 나는 그게 아깝다는 생각만 하진 않아."

"하지만 그 시간들을 잃어버리는 건 맞잖아요.

나도 자기개발을 위해서 공부도 하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절대 없을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요."

"그건 결국 가치관의 차이라서 그게 옳다고, 옳지 않다라고 말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아."

여기까지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나는 어떠한 말 한 마디조차 해줄 수 없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도저히 무엇이 어떻다, 라던가, 이것은 옳다, 저것은 그르다,

이런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따위의 말들을 더해줄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하기엔 싫었으며,

진지함을 더 보태려고 하기도 싫었으며,

이런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려는 말조차 하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위로의 말을 하기도 싫었다.


2.

나에 대한 마음이 식을까 두려웠다.

너의 행동, 너의 말투, 너의 표정,

하나하나 모든 것들이 신경쓰였다.

그리고 자잘한 것들이 엄청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런 두려움은 내 자신을 갉아먹으려 애를 썼다.

다행히도 스스로 나를 갉아먹기 직전에 두려움에 맞섰다.

떨리긴 하였지만, 결국 내 안의 커다란 두려움을

엄청나게 작게 만들 수 있었다.

사실 아직 이 두려움은 미세하게 내 안에 남아있다.

시간이 점점 지나고, 지날 수록 더욱 미세해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Hee


한쪽 옷 깃이 흘러내린 것처럼 드러난 표면에서는, 은백색의 광채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

매끄롭고도 무결점인 것처럼 보이는 보석은 아주 작은 크기임에도 어둠의 진흙 속에서 빛나고 있다.


나의 내면을 따스히 밝혀주는 보석같은 이 상징물이 생긴 이유를 안다.


누군가를 마음깊이 사랑하는 것.

누군가를 소중히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나의 내면에 보석을 만들어 주었다.


무엇이든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아끼는 것.

그것으로부터 나의 내면을 밝히는 등불이 생겨날 수도 있다.


나는 내면에는 아주 작지만 찬란한 상징물이 존재한다.

그 빛으로 눈동자를 빛내며, 용기있게 나아가자.



-Cheol


오랜만에 걷는 동네에는 빈 집들이 많다. 할머니, 할아버지 둘이서 하시던 구멍가게는 어느새 셔터가 닫힌 채 몇 해를 외롭게 썩어가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추억하는 형의 말은 소름끼치도록 무의미하다. 불안했다. 익숙한 모든 것들이 잃어질까 두렵고 이미 많은 것들을 스스로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스미는 순간에는 자그마한 한숨을 길게 불어낸다. 사는 것은 어느새 힘겹고 두려운 일이 되어있었다. 가파르게 비탈진 길을 걷는 일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일도 요즘은 무섭다. 셀 수 없이 많은 걸음을 걸었지만 나는 자주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거나 안면이 함몰되어 알아 볼 수 없게 된 얼굴을 상상하며 눈 앞을 깜깜하게 매운다. 매년 빗길운전 사고로 죽는 500명 중에 나 하나가 들어갈까 겁이 나고 날카로운 것들에 상처입을까 신경이 곤두선다.


어린 조카는 눈 감고 걷는 세상과 뒤로 걷는 세상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아, 하고 탄성을 지을 때, 어제는 뒤로 걷다가 넘어져 뒷통수가 깨졌다며 속타는 마음을 붉게 토로하는 형수의 얼굴이 아직 뚜렷하다. 현실을 알고서는 절대 결혼 못 한다는 말을 주고받는 두 형수처럼 나는 차근차근 신물이 나게 될까. 꼬맹이 조카도 나처럼 호흡이 가빠질까.


-Ho


2016년 5월 1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매거진의 이전글"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