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서른 아홉 번째 주제
너는 모른다.
그 계절이 내게 얼마나 아픈 계절이었는지
이렇게 조금조금 가을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찰나마다
아프다.
누구보다 파란 하늘을 사랑했고
구름떼라던지, 낙엽이라던지
그런 것들을 품에 안고 싶었다.
밤마다 달려나가
달이 뜨는 모양 그대로 더 사랑하고 싶었다.
억새풀 사이사이 숨겨진
바이올린 소리도 좋았다.
너라서 좋았고
가을이기에 사랑했다.
코끝을 일렁이던 기억들만 나뒹굴고
이렇다 정의할 수 없는
흔적 몇 풀에
너의 계절, 너였던 계절이 너무나도 아프다.
-Ram
1.
커피를 주문한 뒤 책을 펼쳤다.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책에는 작가의 삶에 대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반 정도 읽었을까,
점점 읽어나가기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렇다고 작가의 삶의 시간들이 불편했던 건 절대 아니다.
어떤 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내가 마주칠 때,
내가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시간들이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나의 힘든 시간들이 솔직히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나의 힘듬이 어색하며, 내가 아닌 것 처럼 얼떨떨하며,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 같이 메타자아 속에 항상 있고 싶어 했다.
당연한 시간들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 책을 읽으니, 나의 시간들도 당연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느껴지는게,
불편했다.
그렇게 나는 그 책을 더이상 읽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길 바라면서도,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2.
그는 내가 얄밉다고 했다. 마치 앞으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이런 경험, 저런 경험을 통해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스스로 한번도 이런식의 생각을 감히 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도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감사하면서, 매우 소중했다. 거진 장시간동안 삐걱대고 있었던 내 안에 있는 엔진에 힘을 싣어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내 자신이 정말 모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180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우리는 희망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으며,
겪고 있는 계절의 시간들이 순환하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희망의 내용이 변하며, 고통의 크기는 계절의 순환횟수와 비례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비례라고 하면 잔인하니, 정비례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지)
얻었던 생채기들이 아물기도 하지만 흉터는 남는 걸 어찌하지 못하며,
이제는 생채기가 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바라는 것보다
조금만 더 빨리 아물게 해주세요, 라고 바라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4.
따뜻한 스웨터가 생각나고,
따뜻한 라떼를 주문하고,
잠을 청할땐 이불을 꼭 끌어안고,
얇은 이불의 두께가 아쉬워지고,
옷장 속에 잠들어있던 자켓을 꺼내고,
길을 걷다 느끼는 선선함에 불현듯 스노우보드가 떠오르고,
에어컨 바람이 더욱더 싸늘하게 느껴지고,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 한 구석이 아린 메세지를 받게 되고,
찬 바람에 더욱더 어울리는 재즈를 마음놓고 편히 듣지 못하고,
마음 한 켠이 조금은 더 달달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가을을 지내고 있다.
5.
가을에는 꼭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야지,
라는 한 여름의 결심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Hee
어느덧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 삶의 시점에 들어섰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을 떠나서 성장기의 기억 그리고 성숙기의 기억까지도
이따금 요즈음은 1~2년 이내의 기억만 선명하다.
주변의 환경이 이따금 바뀌었던 탓일까?
항상 하고있는 회사일에 집중하는 탓일까?
단순히 나이 탓을 하기에는 서른이란 나이가 늙은건 아니잖아? 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어떠한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인 것일까
여전히 확신은 어렵다. 그리고 아직도 그러한 것들의 답은 찾지 못하였다
근래의 시간들은 너무도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일까
뒤로 넘기는 시간들을 외면한 채, 소중히 챙기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가 그렇게 너를 잊어가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그렇게 너를 잃어가는 것일까
돌아갈 곳 없는 불안함을 머금은 채 그렇게 새 막을 열어가고 있다.
오로지 앞을 바라보고
이따금 요즈음은 1~2년 이내의 기억만 선명하다.
찾아온 가을 냄새에도 추억할 기억이 선뜻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Cheol
1.
텁텁한 공기가 순해지고 사람들의 소매는 길어진다. 간절기 옷에 묻은 봄냄새를 가을로 착각할 때 입추가 언제인지는 모르고도 가을이 온 걸 안다. 마음은 이미 가을에 있었고 이제는 계절도 가을인 것이다. 선풍기 없이도 스산한 공기 속에서 눈을 뜨고 여전히 풀벌레는 울지만 매미들은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다. 지독한 여름이 끝나고도 맥주는 여전히 달다. 이럴 때는 친구가 조심스레 풀어놓는 케케묵은 이야기의 곰팡이 냄새조차 가을이 된다. 성큼, 그리고 온통 가을이다.
2.
임대인이 잠적하고 4년이 지나서야 원주집 경매가 끝났고 보증금을 배당받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31일에는 남은 짐을 옮기려고 집에 들렀다. 2년이 넘게 지나도록 찾지 않은 짐은 사실 없어도 상관없는 것들 뿐이라 안 입는 옷과 입을 수 없게 된 옷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가져다 줬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 옆집 윗집 아주머니들과 그간 고생 많았다는 말을 나누고 밀린 공과금을 내고 집 열쇠를 반납했다. 그동안 방치된 집에선 먼지 냄새와 비린 비냄새가 났고 몸이 으슬으슬해질 만큼 찬 기운이 느껴진다. 집이 이 꼴이 된 게 나 때문인지 도망친 집주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를 미안한 감정이 괜히 든다. 올 해 가을의 시작이 좋다고 해야 할 지, 씁쓸하다 해야 할 지.
-Ho
2016년 9월 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