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recipe)"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예순 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당신과 같은 레시피를 공유해도

같은 날을 살 수는 없었다.


나의 한 움쿰과

당신의 한 숟가락은

아주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서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사는 듯 했다.


같은 날 손을 잡아도

나는 하늘을 둥둥 날았지만

너는 미묘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함께 만든 감정도

결국 네가 간간히 맛보던 행위들로

혼탁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같은 음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음식을 원했노라

솔직하게 내뱉었다면


좀 더 근사한 상을 차릴 수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입맛대로 골랐던 것들을

너에게도 맞아 떨어지길

욕심부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앉은 식탁에 내놓은 것들은

안쓰러운 냄새를 품고

차갑게 식어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Ram


1. 나의 아침

이사를 하고, 가구를 사고, 마지막으로 주방 살림살이들을 채우는 중이다.

전기밥솥(사실 이건 집에서 밥을 직접 해 먹고 싶은 니즈에 의해 샀지만, 보온기능이 크게 떨어져 전자렌지를 살 예정이다.)을 샀고, 커다란 웍(파스타를 해먹을 용으로 샀지만 아직 파스타를 내 생애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다. 곧 시도해 볼 예정이다.)을 샀고, 주걱(고르고 골라 투명한 주걱을 사왔는데, 막상 집에와서 보니 예~전에 엄마가 챙겨준 새 주걱이 서랍장에 있었다. 그리고 전기밥솥에도 미니주걱이 딸려왔다. 결론은 난 주걱부자다.)을 샀고, 마음에 드는 포크를 샀고, 더치커피를 마실 기다란 유리잔도 샀다. 그리고 한 시간 이상 심혈을 기울여 고른 그릇들(하지만 그릇 선반이 없어 쌓아두었기에 꺼낼 때 깨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꺼내야 한다.)도 수납장에 채워넣었다. 조미료들을 담을 조미료 통도 사서 조미료를 채워넣었다. 이젠! 나만의 레시피로 요리할 일만 남았다. 지금으로써 가장 요리를 자주하는 시간은 아침이다. 평소보다 20분정도 일찍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인덕션 위에 후라이팬을 올리고 온도를 올린다. 그리고 포도씨유(올리브유도 있지만 이건 나중에 파스타할때 먹으려고 아껴두고 있다.)를 후라이팬에 한 바퀴 돌리고, 후라이팬이 달궈지길 기다리며 냉장고에서 사과, 달걀, 샐러드야채, 드레싱을 꺼낸다. 샐러드야채를 그릇에 담고 드레싱을 뿌리고나면 후라이팬이 달궈진다. 그러면 달걀을 후라이팬에 풀어 계란후라이를 한다. 풀어진 계란의 한 면이 다 익을 때 쯤 뒤집개로 노른자를 터트린다. (난 완숙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완반숙!) 그리고 계란을 뒤집어 남은 면도 익힌 다음, 접시에 옮겨담는다. 그리고 사과를 씻어 사과 반 쪽을 깎아 접시에 옮겨 담으면 아침 완성! 내일 아침에도 이렇게 먹어야지. 질릴 때쯤 메뉴를 바꿔봐야겠다. 사실 내일은 베이컨이 추가 될 예정이다. 예전에 사둔 베이컨의 유통기한이 오늘까지라는 소식.. 냉장고에 넣어두었으니 내일 아침까진 괜찮겠지?


2. 뭐든 해보면 알게 되겠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어?"라는 물음에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요리를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으며, 그나마 해 본 요리들은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밑반찬 정도와 20대 초반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해드린 버섯전골정도. 뭐, 이제부터 하나씩 해보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모든지 원하는 건 해준다고 큰소리쳤지만, 나도 내가 제일 자신있어하는 요리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잡채를 제일 좋아하는데, 잡채를 연마해볼까? 아니야, 김치전도 좋아하니 김치전을 연마해볼까? 아니야아니야, 가벼운 걸 좋아하니 월남쌈을? 하지만 월남쌈은 손이 부지런하면 되는거 아닌가. 뭐, 뭐든 해보면 알게 되겠지!


3. 우리 관계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봐

어떤 관계던, 의무적인 관계는 너무 슬픈 것 같다. 관계에 대한 의미가 무뎌지면 의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관계에 대한 희망이나 욕심따위 등이 없으면 괜히 의무감이 커지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알맹이가 없이 껍데기만 남아있는 느낌이 들면 그걸로 관계는 끝일 것이다. 아무 발전이 없는, 생산적이지도 않은, 영혼이 없는, 의무적인 관계를 더이상 만들지 말자. 우리 모두. 자신도 모르게 의무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4. 비법전수가 필요해요

집에 기름을 사용한 요리를 하면 기름냄새가 깔끔하게 사라지지 않네요. 요리 후 캔들을 꾸준하게 켜놓고 있지만, 혹시라도 더 확실한 방법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Hee


내가 한 것들에 대한 모든 기억을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 그랬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후회되는 것은 공부, 연구, 고민한 것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지 않은 것.


도란도란 프로젝트와 같이 산문을 쓰든 자신의 지식을 기록하든 글을 쓴다.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확실히 삶을 풍족하게 해준다. 어쩌면 그래서 블로거들이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기록물에 더 큰 가치를 두지만, 그래서일까? 요즘은 책상 등 집필환경과 집필도구들에 많이 관심이 간다.


가꾸고자하는 삶의 모습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라 생각은 한다. 다만 20대 중반을 넘어 내 기억들에 단층과 공백들이 생기는 것이 느껴진다. 1~2년 주기로 이사를 자주해서일까? 주변환경이 자주 바뀌며 그에 대한 기억의 상실이 늘어가는 것일까?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았을 때 느껴지는 내 시간의 상실은 나에게 제법 아프게 다가온다.


요즘엔 학습했던 과거 지식들의 많은 부분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사람은 그때그때의 임시방편으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사실 예전에 배운 것들은 사회인이 된 지금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일 수 있다. 난 그래도 내가 배운 것들을 지속적으로 간직하고 싶다. (이미 잃어버렸지만 말이다)


고등학생 때의 필기노트와 자기관리노트, 대학생 때의 과제 정리노트와 발표 자료들 그리고 후배들이 복사해주었던 소중한 필기 자료들, 대학생 때 처음 쓰기 시작했던 철학적 산문들. 자취할 때 처음 배웠던 된장찌개, 모 방송사의 마녀사냥 프로그램을 보며 먹곤 했던 돼지고기볶음, 어머니를 위해 끓였던 꽃게 된장찌개, 누나를 위해 만들었던 닭볶음탕. 고시원 한 칸 방 생활을 하며 아르바이트 다닐 때 싸가지고 다니던 도시락.


내가 살아온 젊음과 애증을 담은 레시피. 기록하지 않으면 상실하게 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너무도 뒤늦게 깨달았다. 후회들과 아쉬움은 적당히 접어둔다. 우리에게는 바로 오늘 저녁 자신만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직 나에게는 내일이 있으니까. 앞으로도 너와 나를 위한 시간들은 우릴 기다려줄 테니까. 나를 위해 그러하듯이 너를 위해 기다릴 테니까. 우리들의 레시피는 조급하지 않게 써나가면 되니까.


지금이라도 조금 더 서로 표현하고 다가서면 될 테니까

지금이라도 조금 더 서로 표현하고 다가서면 될 테니까



-Cheol


들끓는 상념에 마음이 까맣게 타버려 재가 날렸다. 술기운을 끼얹어도 생각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누구라도 좋으니 잠시 곁에 있어달라고, 마음이 파삭거리며 부서지는 걸 좀 보라며 나를 내어놓고 싶어도 살가운 배려들은 언제고 갚아야 할 빚으로 쌓인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신랄한 밤. 잠을 잘 수도 없고 마냥 시들 수도 없을 때 나는 어느새 주방에 서 있다. 저녁에 먹고 남은 음식들이 없을 때는 별 수 없이 요리를 한다. 밤중에 요리는 오히려 낮보다 차분하고 완성도도 높다. 투박한 소리에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칼질 한 번 한 번은 신중하고 정확하다. 정확한 불 조절과 타이밍을 계산하다 보면 소란한 머릿속도 잠시 잊혀져있다. 완성된 요리를 들고 침대 위로 올라가 먹고 나면, 그런다고 순조롭게 잠들 수야 없겠지만 다시 마음이 아파오는 걸 견딜 에너지가 충전되어 있다. 개중에 내가 만들어 먹고 남은 요리를 다음날 엄마가 먹고 좋아했던 간단한 레시피.


재료

소고기 300g / 가지 1개 / 오이 1개 / 생강 1쪽 / 쯔유 2큰 술


소고기 밑간

간장 1큰 술 / 설탕 반 큰 술 / 참기름 반 큰 술 / 후추 조금


1. 소고기를 적당히 자르고 밑간한다.

2. 가지, 오이를 먹기 좋게 자른다.

3. 팬에 참기름을 약간 두른 뒤 소고기를 볶다가 가지, 오이, 쯔유를 넣어 같이 볶는다.

4. 채썬 생강을 넣어 조금 더 볶는다.



-Ho


2017년 3월 1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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