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네이드"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아흔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아끼고 싶은 순간이었다.


조금 열어둔 창문 사이로

늦은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포근히 빨아둔 이불에서

발 뻗고 싶지 않은 날.


네가 먼저 일어나

정갈한 부엌을 흩뜨린다.


시큼한 향기가

다시금 우리의 공기를 흔든다.


네가 건네준 레모네이드에

피식 웃음이 났다.


달고 시고 톡톡 터지는 것들이

미묘하고 자극적이라서,

정돈된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서,

나를 아끼는 마음인것만 같아서.


상큼하게 뭉그러지는 모든 것이

예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Ram


1. 못다잔 잠을 겨우 몰아서 잤고.

요 며칠간 거진 매일 레모네이드를 원샷한 것처럼 굉장히 머리가 띵하고, 정신이 없었다. 부지런하게 움직여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몰아쳐서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도 전에 감정이 앞다투어 튀어나와 며칠을 붕 뜬 채로 보냈다. 길을 가다가도 피식거리는 일이 잦았고, 하고있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헷갈렸고, 중요한 것도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런 날들.


2.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많이 생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나버린다.


3. -

묻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사실 많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수많은 필터를 거쳐 살아나온 질문은 아무것도 없다. 그 포근함에 사라지는 것들만 많아진다.


4. -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 채 정처없이 표류하는 우리들.



-Hee


너무나도 어려운 주제가 떨어졌다. 레모네이드. 레모네이드를 마셔본지가 정말 몇년은 된 것 같은데... 레모네이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였더라. 레모네이드에 얽힌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아무리 궁상을 떨어보아도 마땅한 이야기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황금연휴가 시작되었는데 한가로이 레모네이드라도 마시러 가볼까.


우선 내 기억에 남아있는 레모네이드는 시원하게 해서 마시는 음료라서 항상 음료잔에는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것을 마셨을때 느껴지는 그 '아이셔~'를 마음속으로 내뱉고야마는 참을수 없는 레몬즙의 신맛이 매력인걸까. 톡톡쏘는 탄산과 달달하고도 참을수 없는 신맛을 가진 노란빛 레몬즙이 어우러진 이 음료는 참 싫어하지도 않다만 즐겨찾는 음료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유행에서 멀어진 것일까 생각해보면 또 그런것도 아닌것이 주기적으로 레모네이드를 찾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면 어느 순간부터 주로 마시던 것, 즐겨마시는 것만 마시게 된 것 같다. 그 외의 것들은 그냥 '아 그런 맛이구나'하고는 말아버리곤 하는 습관이 생겨버린 것일까? 왠지 레모네이드가 삶에서 소외되는 순간부터 새로운 것들이나 세상의 일부에 대한 상큼함을 잃어버린건 아닐까? 찾다보면 매일 아침에 한잔씩 마시는 레모네이드가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다.


누군가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이태원이나 신사동 어느 골목 쯤에서 수제 레모네이드를 마셔봐야겠다 생각해본다. 혼자 살게 되거나 독립을 하게되면 매일 아침 레모네이드를 한잔씩 만들어마시는 나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레모네이드, 흠 신선하다.

오늘의 주제, 참 초등학생 일기장 같다.



-Cheol


죽음이 생각보다 가깝던 저녁의 대화를 생각한다. 사는 건 아주 가끔 행복이었고 그 티끌같은 순간들을 위해 평생을 인내하며 살 수는 없을 거라던 연진의 말. 그 즈음 나는 약간의 사랑과 행복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왠지 안쓰러웠던 그녀의 말들을 아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연진에게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다만 죽어버린 사과나무 밭에서 나무들을 모조리 뿌리뽑아야 했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아파할 수 있게 됐다.


그녀의 말이 짙은 공감으로 나를 매만지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녀에게 약간의 사랑은 아주 별것도 아니었고 나에게는 그 약간의 사랑마저도 허용되지 않았지만. 사랑이, 달고 신 레모네이드를 마시게 하는데도 왜 연진처럼 레모네이드를 사랑할 수는 없었을까. 사랑은 종종 고통으로 전이되는데 고통은 단 한 번도 사랑 인적 없었다. 그녀에게, 사는 일은 쉽게 고통이 되곤 했지만 고통은 처음부터 온전히 사는 일 그 자체였다는 말을 위로처럼 건네고 싶다.



-Ho


2017년 10월 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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