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열 여섯 번째 주제
1.
살다보면 그런거지,
사랑은 어려운거야
복잡하고 예쁜 거지
잊으려면 잊혀질까
상처받기 쉬운거야.
- 말달리자_크라잉넛(1998) 중.
2.
살다보면
길의 어느 즈음엔가,
내가 서있는 곳이
벼랑 끝인지
길의 시작인지 도무지 모를 때가 있다.
주변에서 아무리 할퀴고
헐뜯는 존재들이 덤벼들어도
내 존재가 곧 삶의 이유가 되는 혈육과
그늘을 드리워주는 동반자와
함께 무엇이든 곱씹고 웃어버릴 줄 아는 벗.
그만큼만 있어도
간간히 살아낼만 하다.
살다보면 살아가게 되니까.
3.
그렇게 살아가고
어떻게든 지켜내고
또 월요일이 오는 것처럼.
-Ram
1. 불가피한 이해들
살다보면 아무 논리도 없이 이해받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이게 내 자신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논리들. 그동안 살아온 자그마한 시간들과 사건들과 경험들이 어우러져서 만든 순간들. 근데 이게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 경우가 있으면, 저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있으면, '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어떤 부분을 더 설득시켜야 할까. 기반자체가 다르면, 그 위에 벽돌을 제대로 쌓는 법을 아무리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해도, 역시나 역부족이다. 그러면 그냥 다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굴레가 되어버린다. 아니, 사실 어쩌면 기반이 물과 기름처럼 아예 다르지 않다면 어느정도 이해는 되겠지만 그 이해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놓치지 않으려는 신념들이나, 더이상 바꾸려 하지 않는 살아온 방식들, 놓칠 수 없는 자존심 따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다시 또 설명을 해야할까.
2. 모래알같은 순간들
살다보면 순간의 감정들을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모두 흩어져버려 덧없는 허무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허무함을 느낄 때면 아득바득 살 필요가 뭐가 있나 싶고, 감히 바라는 것들은 모두 사라져버릴 거품뿐이고, 욕심을 내봤자 되돌아오는 건 결국 상처라고 생각이 든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3. 물음표
살다보면 마치 뒷통수를 맞는 것처럼 내 생각의 틀을 깨버리는 다른 의견들이 있다. 그럴 땐 마치, 대중교통은 질서정연하게 타세요. 같은 것 따위의 누구나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이 되는 나의 어떤 생각의 틀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마냥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생각의 틀을 견고하게 지켜야할까, 아니면 그 생각의 틀을 깨어버려야 하나, 하는 고민과 딜레마에 빠진다. 그것은 내 철학과 신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깨버리지 말아야 하나. 아니면 그것은 그냥 나만의 아집인 것일까. 그렇다면 혹독하게 깨부셔야 하나. 어떤 선택을 하여야 내가 더 행복할까, 하는 전제도 깔아보고, 그냥 꼭 선택을 해야 하나, 라는 무책임한 생각도 해보고. 그렇게 갈팡질팡하며 또 다시 생각에 갇힌다.
4. 나는 살고 있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사람이 엄마아빠라고 생각했을 시절에는 단돈 오천원만 있어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수중에 오천원은 너무 쉬운 돈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는 여러 시험과 점수들과 싸워야 했던 시절에는 성인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성년자에서 벗어나 애띈 모습으로 술집을 마음껏 들어가 술을 마시고, 평가와 시험따위에서는 벗어나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지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시절에는 더 빨리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가서 성숙해지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이상 학생이 아닌 직장을 다니고, 매달 일정금액의 돈을 벌고, 세대주가 되고, 책임이 막중한 큰 일에서부터 너무 소소한 작은 일 까지 오롯이 내 결정으로 선택할 수 있을 때가 되니, 이제는 어떤 것을 바라보아야 행복할까, 라는 고민을 한다. 행복의 방향은 세세한 0.1도의 각도로 나뉜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시', '한번더'라는 말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조금은 덜 망설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Hee
부족한 것은 많지만 그래도 현재가 감사한 순간들이 참 많다. 결정적이었던 순간 내가 했던 선택들에 만족하고 그 때의 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선택으로 고통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이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싶기도 하다.
살다보면서 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왜였을까? 돌이켜보면 대부분 나 스스로 결정한 것들, 그래서 부족하지만 감사한 현재를 누릴 수 있는것일까?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우리는 이따금 행운을 얻고 실패하기도하고 소중한것을 잃어버린다. 언제나 대부분의 것들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내 삶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으니까.. 살다보면 겪어가는 일들에 있어서 내 마음이 진심으로 바라는 뜻에 귀기울일 뿐이다.
소박한 여행이 필요하다.
-Cheol
사는 것은 별것도 아닌 일이라며 술 취한 재호와 서면을 비틀거리던 게 스무 세 살 겨울의 일이었다. 나는 약까지는 필요 없을 만큼 가벼운 우울을 앓았고 재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많이 복잡했다. 별일 없이 잘 산다는 선한 안부와 근황이 비참한 눈물처럼 머뭇거리다 왈칵 쏟아졌다. 돌아보면 죄다 서글픔으로 덩어리지는 삶이지만 그날 가난한 두 청년은 유난히 더 슬펐다. 음침하고 눅눅한 슬픔이었다.
별일 없이 산다는 말이 사는 일이 별것도 아니란 말로 변하기까지, 다 포기하고 체념한 사람이나 할 법한 말을 내뱉기까지. 밤이 다 가도록 뜨거운 위로나 근사한 말 같은 것은 한 마디도 없었다. 취한 발걸음에 짓이겨진 전단지가 빗물에 쓸려 하수구로 흘러드는 것이 마냥 인생 같아 보였다. 적어도 스무 세 살 까지는, 살다 보니 사는 건 더욱더 힘들어지기만 하는 일이었다.
-Ho
2018년 2월 2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