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스물다섯 번째 주제
위선 : 겉으로만 착한 체함. 또는 그런 짓이나 일
나는 ‘위선’이라는 단어를 통째로 잡고 뒤흔들어보고 싶었다.
아니 도대체 ‘착한 체’라는 것이 뭘까.
실제로는 착한 마음이 아닌데도 착한 사람인 체 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들 위악이라는 말보다 위선적이라는
더 많이 사용한다.
착한 체 하는 것은 관심거리이자 나쁜 것이고,
악한 체 하는 것은 위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만큼
큰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착함’에 있어서는 어떠한 불순물도 없어야 하는
무결성이 강조되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있어 적당히 착한 사람은 없다.
나 또한
택시 기사님이 건네주시는 껌 한 통,
한 두번 마주친 분이 흔쾌히 사주시는 저녁자리 등에도
사소한 감사에도 어딘가 모르게
상대방의 이유없는 착한 행동을 곧잘 의심한다.
이렇게 건네기 힘든 착한 행동에도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물론 세상이 흉흉한 건 맞지만)
그런데 한 번이라도 주위 사람들의
퉁명스러운 태도와 벽을 만드는 ‘위악’스러울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진심을 들여다 본 적이 있을까.
위선적인 사람은 곧잘 골라내고
진심을 요구하곤 하지만
위악적인 사람에게
물론, 위악인지 알기도 쉽지 않지만!
한 번이라도 당신의 속마음을 가까이서 물어본 적이 있을까.
이 글을 적어내려가는 나조차도
어쩌면 이러한 말을 하는 내 손과 입 조차도
위선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쯤 위선적인 사람보다 위악적인 사람들,
스스로를 악이라는 벽으로 가둔 사람들을
돌아보면 좀 더 나은 서로가 되지 않을까.
-Ram
한때는 모든 사람들이 날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지만 내가 어떤 이에게 알게모르게 피해를 끼치던,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던 간에, 그 생각은 정말 부질없다고 느꼈다. 그 때부터 나는 날 위해서 살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날 위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헤어지기 싫은 사람이라도, 모든 마음을 다 해서 좋아했더라도, 떠날 사람은 떠나기 마련이고, 그냥 보기에 밍숭맹숭한 사람이라도, 정신차려보면 어느덧 내 옆에 자리잡아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시기엔 언제나 외롭고, 모든것이 헛되보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느껴지지만 그런 시기를 지나보내고, 또 지나보내고나면 미련도, 원망도 아닌 그냥 순수한 웃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욱더 나 다워 질 것이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면 거센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쳐도 견딜 수 있을테니 말이다.
-Hee
위선.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일부를 숨기고 살아간다. 사회공동체와 공생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부를 억누른다. 그런 면에서 위선은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이다(이러한 위선은 쉽게는 가정에서 자신의 일부를 사생활로 숨기면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거짓되지 않은 솔직한 얼굴의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용인되는 순간, 우리는 크나큰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로부터 내면의 안정과 건전한 자아가 형성된다.
“우리들 속에 살고 있는 동물은 억압되면 더욱 야수적으로 될 뿐”
공격성의 억제는 문명을 위한 전제조건이지만, 동시에 자발성, 창조성 같은 본능적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천재와 광기는 연결되어 있다)
Karl Gustave Jung:1875-1961
이따금 공동체(가정과 사회에서)는 우리에게 특정한 모습을 요구하고, 우리는 공동체를 위해 그 모습을 내면화 한다. 내면화에 실패하게 되면 위선이 생겨나는데, 이러한 위선을 위한 숨김으로부터 시작되는 나의 자기억제는 자아의 뒤틀림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때때로 자아의 뒤틀림을 인식하지 못하곤 하는데, 이는 특정한 모습과 연관되어 만들어진 자아와 자신 속의 본능이 충돌하는 순간 변덕이 자아를 지키기 위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뒤틀린 자신의 모습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Karl Gustave Jung이 표현한 우리들 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가꾸고 아껴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뒤틀린 자신의 모습에 직면하였을 때, 이러한 개념들을 인지하고 사회와 문명과의 공존을 위해 자신의 마음속 동물들을 돌보고 타협해야 한다. 때대로 우리는 너무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회와 남들에게만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돌보지 못한 동물들은 이따금 우리를 의도치 않은 불행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나의 위선과 변덕과 뒤틀린 내 자신을 대면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미성숙했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배신해야 했던 나의 뒤틀림에 대한 ‘풀이’이다.
-Cheol
나쁜 사람.
위선 하면 떠오르는 생각.
1.착한 아이 콤플렉스
2.관계에 대한 것. - 거리와 높이에 대한(따라 달라지는) 개인적인 시선
“그래, 꼭 그런 애 하나씩은 있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지.”
위선자. 이는 자신의 잘못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난 순간 또는 개인의 상황, 가치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심리적 상처를 받은 쪽에서 쓰는 경우가 많다. 위선을 언급하지 않으면 나 혼자 악(惡)이 되니까. 나를 지키기 위해. 나도 그랬다. 좀 더 쉬운 표현으로. “야, 착한 척 하지 마.”
높이라기보다는 ‘정도’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판단 기준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로 이어지고 우리는 각자의 척도로 상대의 행동을 판단한다. 상대적인 것이다. (물론 명백히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쓰인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주관적인 기준을 적용할 뿐.)
“넌 위선자야.”
막상 들으면 털이 삐쭉 서는 말. ‘그래, 반박할 수 없지.’
“미안해.”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목소리에는 다양한 감정이 뒤엉켜 떨리지만, 사과의 말을 꺼내는 내가 더 싫었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나는 치사하게도 착한 체하는 나를 다시 외면한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아니 알고 있다. 눈을 가리면 보이지 않는 양 고개를 돌리고선 다른 곳을 바라본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달까. 내 어두운 면을 인정하는데 덤덤해진 걸까. 비뚤어진 마음이 굳어진 걸까. 그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마음속에선 ‘미안합니다.’가 아닌 “유감입니다.”가 되어버렸다. 한편으로는 거짓된 표현의 속박에서 벗어난 기분도 든다. 스트레스는 덜 받을까?
위선적 행동. 그와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그와의 거리가 멀다면, 다시 말해 그가 타인이라면 우리는 단호해질 것이고 가깝다면 조심스러워 질 것이다. 가까운 것을 넘어 친밀한 사이라면 솔직해지겠지. 이는 서로가 가지는 믿음과도 연관이 있다. 솔직한 표현은 그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그대로 나타나는 법이다. ‘위선’의 저변에 어떤 심리가 깔려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종종 위선적 행동을 하며 또 누군가를 위선자로 만든다. 시간이 갈수록 누군가를 믿지 못하게 되었고, 자신을 숨기고 감추려 한다. 이는 다시 ‘위선’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믿음이 필요한 세상이다.
- 이웃집 꽃미남 -
네 진심이 뭐야? 솔직하게 말해봐.
누군가 이렇게 말을 하면 그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진실은 거짓의 포장지를 벗기면 짠하고 드러나는 달콤한 사탕이나 초콜릿이 아니다.
피와 살을 보호하는 피부가 필요하듯 진심을 가리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했다.
상처를 보이면서까지 솔직하기 보다 화사하게 웃으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그 여자에게 더 안전했다.
- 이웃집 꽃미남 中 독미 독백. -
-Min
2014년 6월 2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