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도란도란 프로젝트 - 스물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당신의 메모는 조금 특별했다


뜻뜨미지근한 도시락을
랩으로 칭칭 감아주며
사이에 조심스레 끼워넣은
맛있게먹고 조심하라던 그 한 마디


문득문득 당신의 손길이
잊혀질즈음이면
하루를 응원하고
사랑을 전하던 작은 메모


당신의 메모는 당신의 것이 없었다


딸 방값은 매달 23일
아들 학원비는 매달 15일
남편 병원 또 딸의 치과..
그리고 반찬거리 몇 개


스물 넷,
나의 메모는 밋밋하다


토익 공부 계산기 과제 보고서...


...

나의 메모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Ram


내 방 책장 아래쪽에 놓여있는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5년 전 다이어리를 꺼냈다.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혀있던 ‘나의 할 일'들.
3일 뒤 누구를 몇시에 어디서 만나는 것 부터, 한 달 뒤에 보아야 할 시험의 시작 시간까지.
당장 내일 해야 하는 과제부터, 일주일 뒤에 발표해야 하는 PT의 주제까지.
해야 할 것들이나, 준비할 것들 등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다이어리에 적어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덕분에
내 다이어리는 텅 비어 있을 날이 없었다.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성격덕분에 사소한 일들부터 비중이 큰 스케줄의 세세한 동선과 움직임들까지 적혀있었다.


나는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이 마음에 남는 게 싫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아주 나중에라도 그 적힌 미련의 조각들을 보았을때 드는 감정들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누굴 만나든, 그 시간과 순간을 겪으면서 드는 생각을 함부로 다이어리에 적지 못했다.
지나간 것은 그냥 지나간 것일 뿐이라고 마음을 먹고, 잊기 싫은 순간도 굳이 적지 않았다.
정말 내 자신이 잊기 싫은 순간이라면, 훗날 내게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아있을 거라고.
그렇게 내 자신을 설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다.
내가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있구나, 라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분명히 되돌아 보았을때 내게 마음따뜻한 것들이 지금 내가 생각했던 것들 보다 훨씬 많을텐데, 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느끼며 그 순간부터 다이어리의 내용들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느꼈던 생각들. 어떤 이를 만나며 느꼈던 마음들. 무언가를 보면서 스쳤던 영감들.
이게 사랑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감정들.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던 혼란들. 쓰나미처럼 몰려오던 후회들.
다시 되돌아보며 반성하던 시간들. 미지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미래들이 다이어리를 채우고 있었다.
단순히 미련이라고만 생각했던 지난 날들의 자취들을 조금씩 조금씩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자신에게 더욱 솔직해지고 있었다.


-Hee


잊지 않기 위하여 간략히 적는 글.



스물 여덟.
잘 맞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가족을 많이 사랑하려 노력하였다.
꿈과 진로에 대해 나의 한계를 쉬이 넘지 못해 많이 방황하였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시간이었지만 바보같이 하지만 당당하게 그리고 마치 소설처럼 사랑하였다.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Cheol


생각, 마음을 담아낸 글


기억하고자 하는 것.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것. 전달하고자 하는 것. 이들의 흔적.


뜻을 전하다. - 아날로그

내 방 한쪽 벽에는 생각들을 정리해 둔 종이들이 붙어있다. 진행하던 일들이나 요리 레시피, 필요한 것의 리스트 등 이런저런 메모들이 여러 종이들(사진, 포스터, 그림)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최근에는 이 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집에 잘 들어오질 않았으니 당연하지. 그러한 이유로 이 벽을 한동안 가다듬지 않았지만, 나는 이 벽에 생각을 담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종이에 직접 써 붙여야 한다. 이상하게 모니터 앞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고, 쉽게 정리되지도 않더라. 물론 마지막 정리는 컴퓨터를 이용하지만, 시작 지점은 종이와 연필이다. 나는 메모를 통해 생각을 이어가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메모들은 과거로부터 보내진 사유의 흔적들이다.
우리의 근본은 아날로그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전하다.
한동안 괜찮았다. 나쁘진 않았으니까. 갑갑했던 시기를 지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는 만큼 흔적들을 하나하나 지워갔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냥 삭제버튼을 누르면 되는 거니까. 그래도 기억하는 것만큼 그 흔적들이 많지 않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 강렬했던 만큼 우리 사이에 많은 것들이 남아있을 줄 알았거든. 생각해 보면,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가득한 관계일 것이고 전하려고 했던 이야기들이 많았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보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그때는 왜 이 마음이 읽히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주고받은 메시지들은 어릴 적 주고받던 쪽지나 짧은 편지와 비슷했고, 어린 우리가 마음을 전하던 것과 큰 차이는 없을 텐데. 예전에는 쪽지 하나, 책상 서랍 속 편지 하나에 온종일 가슴이 떨렸는데, 인스턴스 메시지에 익숙해진 지금은 그 마음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편지를 받으면 마음이 뭉클해지는걸. 오히려 그런 편지 받기가 더 힘든 요즘이니 감동은 더 크지 않을까? 이제 가상의 이야기들은 큰 힘을 가지지 못한다. 직접 써내려간 이야기는 흔한 메시지와는 존재감이 다르다. 그 무게만큼 받는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Min


2014년 7월 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매거진의 이전글"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