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스물일곱 번째 주제
짤랑.
유리컵에 부딪히는 얼음 소리가
날이 선 듯 날카로웠다.
그는
언제든지 땀을 뻘뻘 흘리는
그 유리컵을 낚아채서
커피인지 주스인지도 모를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켜버릴 것만 같았다.
목마름을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닌,
숨막히도록 무거운 공기에
타들어가는 듯한 자신을 달래고 싶었으리라.
물론 이렇게나 넓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도 고요하고 무거운 공기를
마셔본 적도 없었으리라.
그녀는 차가운 미소로 답했다.
“끝.”
끝을 말하는 냉정하고 군더더기 없는 말에
그는 아무런 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다.
불이 난 듯
새빨갛게 타들어가는 속을
으적으적 얼음을 씹으며 생각했다.
싸움의 끝에서 그는 늘
‘그래, 사랑이 식을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해왔다
언제나 그녀를 잘 달래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처 뜨뜻하게 데워볼 기회 조차 없이
그대로 그의 눈 앞에서 녹아내려 사라지려고 한다.
그가 너무 열렬히 사랑했던 건지.
그녀가 너무 미적지근하게 좋아했던 건지.
둘의 온도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누가 덜 좋아하고 더 좋아했는지를 재는 것 조차
의미가 없었다.
이미 둘은 녹아내린 감정 앞에서
끈덕지게 첨벙거리며 끝을 바라볼 뿐이었다.
-Ram
일주일 내내 술을 마셨다.
달리 기분이 좋아서도, 나빠서도 아니였다.
그렇다고 밤낮을 가린것도 아니였다.
'얼음물 한 잔 주세요’
항상 술 마시기 전에 내가 하는 말이였는데, 요 일주일동안은 얼음물도 필요없었다.
안주가 무엇이 되었던 상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
엉클어지려고 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럴수가 없었던 건가.
-Hee
일주일째 연락이 없던 그는 얼음 같이 차가웠다.
아무도 그가 그토록 차가워진 사연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누군가의 사연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사연 하나, 아픔 하나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단지 냉소에 가득 찬 냉랭한 그를 감당해야 할 뿐이었다.
사실 누군가의 사연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사연 하나, 아픔 하나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우린 상처받지 않게 차디 찬 얼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얼려버릴 필요가 있다.
마음 따듯하던 한 명의 청년은 그렇게
냉랭한 얼음조각으로 가득 찬 태풍 같은 사람이 되어갔다.
무슨 사연일까.
뒤틀린 그의 마음은 그렇게 휘몰아치며 날뛰고 있었다.
사랑으로 가득 찬 산들산들 봄날의 호수 같았던 그의 마음은
죄책감과 질투와 슬픔과 좌절, 하지만 겉보기엔 고요한 감정들,
그로 인한 뒤틀린 행동들로 가득 차 버렸다.
<참고: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번개에 놀라 날뛰는 말>
수 많은 배신의 감정의 폭풍을 끌어 안고 있다.
그리고 그 것들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그는
겉에서부터 자신을 얼려버리고 있다.
혼자서는 자신을 얼음같이 차갑고 단단한 사람으로 밖에 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어쩌면 누군가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사람.
비웃음 받는 것이 두려워 남을 비웃는 사람.
손을 내밀어 그이의 손을 마주잡아 주고 싶다.
-Cheol
그와 마주 앉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겨진 얼음을 입에 넣었다.
차가워.
나는 얼음을 물고선 입을 닫았다.
눈은 감지 않았다.
열병에 뜨거워진 이마가 식어간다.
발개진 귓가에선 여전히 환청이 맴돈다.
나는 다시 얼음을 입에 넣었다.
차가운 얼음에 입술이 덜덜 떨린다.
시야가 흐려진다.
연이어 나타난 환영에 나는 눈을 감았다.
찌릿찌릿
입속이 아려온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속에 남은 얼음을 씹어내지 못했다.
얼음은 녹아서 내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시원하지 않다.
내 맘 속 사람이 내 사랑은 아니더라.
-Min
2014년 7월 1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