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일흔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그 애는 그런게 멋졌어.


바람이 불 때에

사르륵 흔들리는 머리칼이,


조금은 얼룩해 보여도

하얗게 흐드러지는 피부가,


그리고

그대로 흐르듯이 떨어지는

몸 곳곳의 선이,


그런게 멋졌어 정말.


그런 너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어 내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마치 꼭 맞는 짝인양,

마음의 갈래가 네쪽을 향했어.


그래서 온통 너를

좋아해버렸어.



-Ram


1.

이제까지 잘 다듬어왔다고 생각했다.

계속 이대로만 더 다듬어가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대로 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의 정도, 사람의 마음, 믿었던 관계, 심지어 나의 마음까지도.

곱게 다듬었다고 생각한 것들은 너무나도 무심하게 거칠어졌다.

거칠어졌다고 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이미 고르고 골라서 다듬었던 건데.

내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뭐겠어.

또 다듬는 수 밖에.


2.

산송장같이 거실바닥에 오랜시간 누워 생각을 해봤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무니, 거의 시간여행 수준이 되어버렸다.

13살때의 나도 나오고, 15살때의 나도 나오고, 19살때의 나도 나오고,

21살때의 나도 나오고, 24살때의 나도 나오고, 26살때의 나도 나오고,

2015년의 나도 나오고, 2016년의 나도 나오고, 2017년의 나도 나왔다.

그렇게 시간여행을 하다보니 너도 있었다. 네가 궁금해서, 네가 궁금해져서,

채팅방을 켜서 애꿏은 아이폰만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마치 도피처같잖아.



-Hee


서로 부대끼며 살다보니 우리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 것 같았다. 한결같을줄만 알았던 우리 모습은 세대간, 남녀간, 서로의 가치관, 정치색, 주변 환경에 따라 제각기 다른 분위기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갔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또 다른 환경에 머물수록 경향이라는 것이 각자의 성격, 인격, 행동에 걸쳐 나무 결처럼 생겨났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결은 시간이란 도화지에 그 모습이 그려졌다.


“우리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에요”


때로는 애써 노력하여 그 결의 모습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보기도 했고, 때로는 그 결에 의지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도 했다. 다만, 현재 시간에 우리의 결이 다르다는 사실만큼은 언제나 견디기 힘들었다. 서로가 다른 순간마다 더욱 애써 서로의 방향으로 이끌어 부딪치고 그 부딪침을 서로 포용해보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시간을 너의 시간에 부딪치고 서로의 다름을 포개어보기엔 여전히 미숙하고 부족한 자신만 존재할 뿐이었다.



-Cheol


1.

부유한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을 만큼의 열등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열등감이 나를 구차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먼저 선을 긋고 멀어지려 하는 편입니다.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조차 이해할 수 없을 변명만 늘어놓은 채 도망친 적도 있었죠. 애초에 결이 다른 것이라 생각해버리면서요. 나는 아마 앞으로도 그 열등감을 극복하지는 못할 겁니다.


2.

그녀가 매번 십만 원도 넘는 식당으로 나를 데려갈 때마다 나는 배가 부르다며 샐러드를 먹거나 가벼운 술을 한 잔 시켜서 마셨다. 한 주 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을 한 끼에 쓰는 게 어렵다는 말은 하지 못했고 우리가 앞으로 보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은 힘겹게나마 전할 수 있었다.



-Ho


2019년 3월 1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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