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일흔 여섯 번째 주제
언제든 오신다더니,
떠나던 때의 계절이 벌써
한 곱절은 돌았는걸요.
그래도
다시 오실 줄 믿어요.
당신이 떠나던 때는
춥지도 덥지도 않던
그 계절 어디 사이 즈음,
그런 날이 어디 쉬운 날이겠어요.
초록이 무성하고
무심한 구름도
바람에 나부끼는 향기가 나던 때.
풀 소리가 바스락거려서
걸음걸음마다
떠나는 소리가 따라오던 계절.
언제든 오신다고
이야기하고 가셨으니
저도 언제라도 품에 안기도록
이 계절도 무사히
지내보는 것 뿐입니다.
-Ram
1.
여러 계절이 지나고 또 지났다.
이제 네가 사라졌고, 기억을 애써 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지만 어떻게 보면 마음 편한 망각의 동물이다.
2.
가을에 네가 있었는데, 봄에도 네가 있다.
겨울에는 꽤나 친절한 너였는데, 여름에는 성난 네가 있다.
가을에는 날 외면하는 네가 있었는데, 봄에는 자꾸만 나를 부르는 네가 있다.
겨울에는 따뜻한 네가 있었는데, 여름에는 무심한 네가 있다.
3.
겨울이 지날 무렵, 집에 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비교적)뚜렷한 나라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옷이 그나마 나뉘어져 있어서 항상 계절마다 옷 정리 하기 바쁘고, 때로는 (특히 겨울철에) 옷의 부피가 옷장의 크기보다 더 커져서 넘칠 때도 많은데. 사계절이 없는 나라에서는 사계절이 있는 나라보다 옷의 개수가 적을까? 아니면 그 나라의 계절의 시간도 우리나라의 사계절의 시간이랑 같이 때문에 시간에 비례해서 옷의 개수가 많을까? 여름나라는 옷이 얇아서 옷 정리하기 편할까? 반대로 겨울나라는 옷장이 지금보다 두세배는 더 커야겠지?'
-Hee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 개의 계절을 소중히 채워갈 수 있을까? 이따금 그럴듯한 핑계로 서로를 소홀이 하는 일은 안생길까? 혹여나 서로에게 바라는게 많아 서로를 지치게 하는 일은 없을까?
정말로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서른 세번째 봄. 네 개의 계절이 돌고 다시금 봄이 찾아왔다. 마냥 모든것이 싱그럽지만은 않은 서른 세번째 봄.
-Cheol
1.
시원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이 그립다. 여름이 그립기보다는 지난번 여름에 느꼈던 감정을 올해에도 다시 느끼고 싶을 뿐.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이 바뀌니까(심지어 부산으로 이사도 왔기 때문에) 당연히 올해는 올해의 여름을 새롭게 느끼게 될 테지만 아무래도 나는 새로운 어떤 것보다 확실히 좋았었던 지난번의 것들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누가 사서 먹을까 싶던 편의점 와인을 사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마시고 집 가는 길엔 늘 한 손에 팥빙수와 우유가 든 비닐봉지를 들겠지 작년처럼. 또 많은 산과 섬을 걸으며 돌아다니겠지. 마주하는 나를 멍하게 울리는 것들이라면 이미 차고 넘치게 좋아져버리니까,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겐 정물 같은 사람이 될지라도 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야겠지.
2.
봄을 한참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단지 겨울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랐던 것이었었나 보다. 봄은 이미 왔고 부산에는 이미 한참 전부터 훈풍이 불기 시작했는데도 나는 봄과는 조금도 관련 없는 사람처럼 뒤에서 멍하니 보고만 있네. ‘봄을 여러 차례 겪으면 그처럼 기다리지 않으면 봄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처럼 기다린다는 말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지. 정말로 봄을 좋아하는 게 맞나요. 그저 추운 게 막 지나갔기 때문에 한결 나아진 제 마음과는 많이 다른 건가요.
-Ho
2019년 4월 2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