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여든 네 번째 주제
"쾅"
내 것 이라고 믿기 싫은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무엇인가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소리의 주인을 찾아서
일련의 과정을
마무리하기 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감정이 소모되었다.
꼬박 하루가 지나고,
그리고나서야
나는 "나"를 챙길 수 있었다.
30년 가까이
나는 스스로 일어나고
또 해결해왔다.
이 많은 일들을
나는 결국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또 스스로 해결하려
했던 것이었다.
기댈 줄 모르는 사람의
인생은
참 가엽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가여운 삶을
나는 또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안타까운 일인지,
당신은 모를거야.
아니, 몰랐겠지.
우리는 모두
힘든 삶을 사는 거잖아.
어리광 부릴 수 없는 거잖아.
그런 날의 사고가 있었지.
-Ram
1.
10년째 무사고였던 아빠는 (때때로 10년째 무사고라고 자랑도 하셨다지)
그 말이 무색하게 교통사고가 두 번이나 났다.
게다가 두 번째는 차를 폐차시킬 정도로 크게 났다.
무사고라는 말은 없다. 10년이든 20년이든 그냥 사고는 언제든지 날 수 있는 법이다.
2.
그 날 나를 만나기 직전,
넌 사고가 나도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 앞에 앉았지.
얼마나 놀랐을까.
내가 뭐라고.
3.
주변에 차를 운전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사고 소식도 들린다.
제발 조심하자.
제발.
4.
사실 나도 안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무렴. 모를까봐. 알고도 남았지.
그래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고,
질끈 못 본 척 눈감아보기도 하고,
그냥 왜 그러는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채로 넘어가기도 했었지.
그래도 어쩜 내 얼굴 앞에서 날 보며,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할 수가 있지.
그게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지 생각이나 해봤을까.
그리고,
그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런식으로 상대방에게 마음에 있는 말을 그대로 한다면,
후련한지.
말은 내뱉으면 사라져버릴지 몰라도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Hee
우리가 처음으로 손을 잡고 함께 걷던 순간.
고통때문에 한발자욱도 디디지 못하던 아픔의 순간.
두 순간 모두 우리가 어찌하지 못할정도로 예고없이 찾아왔다..
다 지나고 난 다음에야..
그제야 더 선명히 느껴졌다.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던가
서로를 마주보며 밝게 웃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싱그러웠던가
하고 말이다.
-Cheol
장거리 트레일을 위한 모든 티켓을 예매해둔 상황에서 무릎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사고라면 사고일 것이다. 작년인가 한국인 한 명이 여름의 폭설을 만나 사망했다는 뉴스를 듣고 불안함이 한 층 더 크게 자라났다. 한 여름에도 기상이 좋지 않으면 기온이 영하 십수 도 아래로 떨어지는 곳. 유일한 교통수단은 헬리콥터, 그리고 통신이 내내 두절돼 연락조차 닿지 않는 곳을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네팔에 가려 했던 나를 끈질기게 설득시켜 스웨덴으로 이끌었던 서경과 재형은 각자의 사유로 계획을 돌연 취소해버렸다. 취미보다 생계가 더 우선시 되는 현실은 나 역시 마찬가지라 아쉽다는 말 밖에 다른 무엇도 더 할 수 없었다. 다만 세 명이 분산해서 들어야 했을 장비를 오롯이 혼자 다 부담하게 될 테니 준비를 조금 더 세심하게 하기로 했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죽지 않을 수 있도록 장비의 상태를 점검하고 몇 번이나 배낭을 다시 패킹해보았다. 작년부터 그런 준비를 해오다 보니 이제는 스스로를 제외한 모든 것이 거의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릎에 대해서는 조금 덜 걱정해도 좋을 것 같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끝내 결승점을 통과하는 마라톤 주자처럼 조금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 확실한 기쁨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믿음과는 상관없이 사고와 죽음에 대한 걱정은 마음 한구석에서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도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풍경 속에 서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더없이 설레어 벅차다. 나는 끝끝내 어떻게든 떠날 것이다. 그곳에 서서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느끼고 싶다.
-Ho
2019년 6월 1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