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소음"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여든 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01.


툭. 툭.

나무 도마에서 나는 소리.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


창문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과 커튼이 서로 부서지면서

내는 소리.


사부작 사부작,

마룻 바닥을 조심스레 걷는 소리.


머리칼을 쓸어올리고

깨우고 싶은 건지,

깨우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손길이

간질거리는 소리.


모른척 끌어안고 마는

그렇게 여유로운 당신과의 주말.


02.


혼자라는건 아무래도 외롭다.


아무리 시끌벅적한 곳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도


결국 집에 돌아가는 길목즈음에서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이

이따금 밀려온다.


마을 버스에서 내려서

집 대문까지의

그 찰나의 순간이

미치도록 외로운 적이 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결국 나는 혼자였던 것이라서.


집에 와서

창문을 걸어 잠글 때의 적막함이

너무나 무거워서

듣지도 않던 노래를 틀어두고.

침대에 눕는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오래된 스프링이 내는 통통 소리가

퍽 나쁘지 않아서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작고 부족한

무늬만 어른인 사람이라서.


누군가 옆에서 뒤척이길 바라는 걸지도.



-Ram


1.

대학생때 공강인 어느 날,

아마 지금처럼 흐린 여름은 아니고, 바람이 솔솔 부는 날이 좋은 여름 날이였다.

내 방은 큰 창이 있어서 문을 열어놓으면 방충망 사이로 바람이 정말 많이 쏟아졌고,

그런 오후에 난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골똘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거실에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이 생각이 들자, 문 밖으로 라디오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나와 같이 점심을 먹고 난 후 바로 난 방으로 들어왔는데,

괜히 들어왔나, 집에 이렇게 오랜만에 오래 있는 건데, 엄마랑 더 시간을 보낼 걸 그랬나,

엄마가 적적한 마음에 괜히 라디오를 틀어놓은 건 아닌가, 하는

괜한 기우(였으면 좋겠다. 지금도.)때문에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라디오에서는 누구지 모를 약간 시끄러운 디제이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며 노래를 선곡했고,

엄마는 식탁에서 예쁜 찻 잔에 믹스커피를 마시며 문화센터에서 나온 전단지 비스무리한 것을 읽고 계셨다.

난 엄마의 맞은 편에 앉아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와 둘만 있을 때 절대 방문을 닫지 않았다.

뭔가 엄마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괜한 나의 걱정에.


2.

어릴 적에 학원끝나고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자

어둠이 날 반길 때가 제일 싫었다.

복도 센서등이 꺼지기 전에 부리나케 신발을 마음대로 벗어두고 거실로 들어와서

모든 스위치를 다 눌렀다.

심지어 TV까지 켜 두어야 안심이 됐다.

내 방에서 컴퓨터를 해야 할 때도 거실엔 항상 TV가 켜져있었다.

빈 집의 어둠과 적막을 싫어했다.

항상 아빠는 날 전기도둑이라 불렀다.

지금도 사실 그 때의 습관이 남아있어서 굳이 필요없는 방까지 불을 켜 두는 게 일상이다.

누군가는 집에 있을 때 불을 다 꺼놔야 마음의 안정이 든다고 한다.

나도 그 말을 듣고 따라해봤는데, 뭔가.... 불안하다. 괜히.

이제는 고칠 때도 됐는데.



-Hee


"cheol씨가 오늘 말이 별로없네?"


"아, 네" 언제부터 멍해졌던 걸까? 그들이 시시콜콜 나누는 이야기들이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도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았던걸까? 어서 내 동굴로 돌아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바흐의 영국 모음전을 틀어놓고 조금이라도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왜이리도 유난인걸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지으며 그들의 이야기들을 띄워주어도 될텐데 싶었다.


아직도 다 정리되지 않았던걸까 싶었다.



-Cheol


돌연히 취소된 휴무일에 출근한 사람들의 심리란 게 다들 비슷한지 사무실이 종일 조용했다. 때때로 옆 사무실 창고를 보수하는 소음이 크게 울려 퍼졌고 비가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 이륙하는 항공기의 거친 엔진 소음이 들려왔지만 사무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루 전에 급작스레 취소된 휴무에 대한 보상심리였는지, 아니면 일이 쌓이지 않도록 미리 다 처리해뒀기 때문인지 어쩌면 그저 쉬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도록 앉아만 있어도 사무실의 분위기가 불편하지 않은 것이 자주 있는 경우는 아니라 그저 충실히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비가 아직도 많이 와?


네, 정말 쉴 세 없이 퍼붓고 있네요.


아까는 좀 잠잠해진 것 같더니, 이게 도대체..



가만히 앉아있다가 흡연구역에 다녀오는 일을 몇 번 반복하니 바라마지않던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만큼 비는 거세게 내렸지만 다섯시 반이 되자마자 모든 전원이 내려갔고 사람들은 하나 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미리 준비해 온 배낭을 메고 국내선 터미널로 향했다. 하나둘씩 결항되는 항공편을 바라보다 불안에 떨었다. 결국 내가 타기로 했던 항공편마저 붉은 글씨로 결항됐다는 것을 나타내는 알림판을 확인하고 9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태풍이 이런 거지. 비가 이만큼 많이 내릴 때가 되긴 했지.



저녁거리를 사고 고양이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이틀 치, 가득 꺼내둔 고양이 사료와 높은 습도가 만들어내는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들이치는 비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해 초에 불을 켠 뒤 배낭을 풀어 정리했고 친구에게는 오늘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다음번에는 꼭 만나자고 사과 문자를 보냈다. 단 하나도 마음처럼 되는 일은 없었지만 조금도 내가 관여할 여지가 없었던 일들 앞에서 멍하니 놓쳐버린 하루. 힘이 빠져 축 늘어졌지만 어쩐지 굉장히 마음이 편한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Ho


2019년 7월 2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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