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스물아홉 번째 주제
뭐, 사전적 의미로는 크게 뭔갈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이라고 하더라
만화나 영화에 보면 악당들이 세계정복을 꿈꾸곤 하는데
그게 곧 야망을 아우르는 말인줄 알았더니.
다들 꿈이나 욕심이라는 단어를 쓰지, 야망이라는 축축하고
심드렁하거나 다소 어두워 보이는 단어는 잘 안쓰는 것 같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지만,
사실 다들 내 꿈은 대통령입니다 라고 할만큼
큰 꿈, 야망을 품고 살기에는 너무 현실에 녹아내린걸까.
내 주변을 통틀어 ‘야망'을 가진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야망을 품은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은
조소를 보낼 뿐 박수치며 응원하는 경우도 드물다.
'현실'을 바라보라며 등을 토닥이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얼마 전, 듣고 있는 강의에서 배운 것이 있는데
목적과 목표의 차이였다.(뜬금없지만)
목적이라는 것은 이루고자 하는 것의 내용이고
목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세우는 것이라고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떠한 목적이나 목표를 세우더라도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모든 걸음인 셈이다.
야망도 꿈도 욕심도 그렇다.
다들 그 끝에는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차근차근 걷는 것이다.
어차피 다다르는 곳이 같은 곳이라면 우리는
야망이라는 것에 대해 조소를 던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전부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걸음일 뿐이니,
야망을 가진 자에게는 오히려 더 큰 응원을 보내주어야 한다.
정말 크게 이루고자 하는 희망을, 큰 행복을 바라는 자에게
그 희망을 이어나가고 쥐고 뛸 수 있게
응원하거나, 혹은 바라만 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Ram
그와 함께 있으면 내 꿈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야망은 얼마나 있는지,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인지 굳이 설명하거나 어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냥 온전하게 내 자신의 안위를 먼저 물어보고, 걱정해주었고, 어떤 옷을 입던지, 어떤 머리모양을 하던지, 심지어 어떤 표정을 짓던 상관없이 그냥 전부 예쁘게만 보인다고 했고, 전부 좋다고 했다. 그는 내게 마치 거대하게 우뚝 서 있는 칠레의 이스터섬에 있는 모아이와 같이 느껴졌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묵묵하게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아이. 하지만 사람은 절대 석상이 될 수 없었다. 그와 나는 서로 건드리지 말았어야 하는 감정선을 건드렸고, 서로가 좋아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했다. 그와 나 전부 절대 익숙하지 않은 감정선이였기에 어찌할 줄 몰랐다. 나 역시 이런 감정이 너무 낯설어 감정들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안절부절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치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의식하지 않고 행동한 것들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 분위기가 그에겐 정말 불편했다고, 그게 도화선이였다고, 그는 내게 이야기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였고, 내가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어가려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 이외의 몇몇 사람들이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고 하니 내가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했다니 그에게는 물론이고, 내 자신에게조차 변명할 수 없었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 진짜 최악이다.
-Hee
언젠가 야망에 대한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나의 야망에 대해서 말이다.
난 언제부터인가 모두가 야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제나 야망이라든지 웅지라든지 품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쉽게 듣는다. 하지만 야망과 웅지는 자칫 잘못하면 자신에 대한 포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큰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애초에 야망과 웅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애초에 큰 뜻을 정해놓고 애쓰고 힘써서 그를 채워나가는 것 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하루하루를 소소하게 채워나가다 보면 그 것이 큰 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오후이다.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하루하루를 소소하게 채워나가는 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비슷한 단어를 알고 있다면 꼭 알려주면 좋겠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필요한 것은 야망을 위한 모략보다는 이러한 것이 아닐까?
야망을 위한 모략 보다는 솔직하고 소탈함이 더욱 좋은 오늘이다.
-Cheol
소소함
[명사]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
꿈과는 다른 것.
원하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정도로 큰바람.
의지가 녹아있는 바람. 커다란 것.
개인적으로는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야망은 자아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
야망을 품은 적이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 '소소함’.
그리고 이들을 엮어 나온 '소소한 야망’.
소소한 야망을 품은 그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어찌 보면 상상 속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도쿄.
그는 정리벽이 있다. 결벽증 증세도 보인다. 식사는 잘 챙겨 먹는 편이지만 운동을 즐기지는 않는다. 다만 마지막으로 집 밖을 나간 때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지금에 만족하는 그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웹상에서 만난 이들과 친밀해 질수록 사람을 대면하기가 어려워졌다. 가상현실 속의 나와 현실의 차이는 커졌다. 문은 더욱 굳게 닫혀선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취미생활이 정리정돈이 되었다. 피자 상자를 차곡차곡 쌓아가거나 책, 옷가지들, 심지어 휴지까지. 집 안 생활에 익숙해진 그는 작은, 소소한 성취에도 기쁨을 느낀다. 그러던 중 피자 배달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나름의 생활리듬을 가지고 지내오던 그가 품게 될 야망은 무엇일까? (크기는 상대적이다.)
관련 콘텐츠.
[영화] 도쿄! 중
segment - '흔들리는 도쿄(Shaking Tokyo)’ (봉준호)
-Min
2014년 7월 2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