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아흔 일곱 번째 주제
명절을 짧게 보내고,
고향에서 멀어지는 길.
엄마, 아부지는
광주 터미널에서 나를 배웅해주셨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여유있게 도착해서,
부지런 떨며 커피 한 잔씩 사기로 했다.
한사코 편의점 커피를 먹자기에
들어가보니 마침 얼음컵이
똑
떨어져서
다행히도 샷추가 넣은
커피를 손에 쥐어드렸다.
출발 10분 전 즈음
아빠는 이리저리 출발하는
문앞을 서성이다가
편의점에 다시 가자고 했다.
아빠랑 가서 고른
과자, 그리고 물.
아빠가 멋쩍게
내가 사줄게 하며
사주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뭐든 사주는 게 당연한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지 얼마 안되었다.
아빠가 사준 과자를 담고
버스에 오를 때,
아니 그 직전에
급히 몰래 뽑아온
현금 몇 만원을 각각 쥐어드렸다.
봉투도 없이.
머쓱하게 손사래 치실 때
버스에 홀랑 타버렸다.
엄마도 아부지도 나도
장담컨데 가는 길이 먹먹했을 것이다.
울렁이는 기분 탓에
헤어지는 길이 더 멀었다.
난 아직도 어린애다.
-Ram
당장 내일의 일도 어떻게 될는지 사람일은 모르는거라 장담하는 것들의 많은 부분들이 의미없어질 때가 많다.
함께 가자고 장담했던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 지도 모른 채 뿔뿔이 흩어졌고,
꼭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던 그들은 자신의 앞가림도 겨우하기 바빠 어느새 잊혀졌다.
장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는 엄청나게 결연해보였지만 이제는 속없는 껍데기인 것들만 잔뜩 남아있는 것 같아서 꽤 석연찮다. 장담하는 사람들보다 조용히 행동하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간다.
-Hee
“내가 장담할게”
그는 아무렇지 않게도 장담하겠단 말을 했다. 나는 왜 그 말을 못했을까?
부러웠다.
나는 왜 그 말을 못했을까?
-Cheol
1.
자원봉사 지원에도 자소서만큼이나 확신에 가득 찬 말들을 빼곡히 적어내야 한다는 것은 최근에나 알게 됐다. 해외봉사도 아니고 고작 국내의 자그마한 트레킹 행사에 자원봉사 지원을 하는데 이런 내용까지 써야 하나 싶은 것들을 모조리 다 적어 넣었다. 응급구조사 자격도 없고 전문 사진가도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런 방식의 성의 표시뿐이었다. 그래서 다행히 다음 주말에 진행될 트레킹 행사에는 참가자가 아닌 진행요원으로 가게 됐다.
트레킹은 이제 내게 특별한 일이라곤 할 수 없다. 큰돈을 치르고 긴 시간을 들여 언젠가 꼭 한 번 가보리라 다짐했던 곳으로 떠나는 게 아닌 이상 트레킹은 걷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운동, 즐거운 운동 정도랄까. 거의 매주하는 일이 매번 특별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지나고 봐야 알겠지만 이번 트레킹은 어쩌면 특별한 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대를 하고 있다. 성격에 잘 맞는 일이라곤 할 수 없지만 지원서에 쓴 내용처럼 잘 해낼 자신이 어째선지 자꾸만 솟구친다.
2.
나한테 공들여도 잘 안될걸. 우리 엄마는 고작 네 살 더 많았던 전 애인도 굉장히 못마땅해 하시는 분이라, 아홉 살 연상은 아마 더 어렵지 싶은데. 아니 그전에 누나는 내 취향이 아니고, 밥 잘 사준다고 내가 누나를 좋아하게 될 일도 아니고. 숨 막히니까 그만 좀 들이대라, 응?
장담할 수 있는 말들은 별로 많지도 않은데 단 하나도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뜻이 거절이라면, 어렵지만 언제든 할 수 있게 됐다. 큰 상처를 같이 나누기 전에 아주 멀리 도망치는 일쯤이야. 명절에 출근한다고 거짓말하고 집에 안 들리는 것 마냥 쉬운 일이다 이제는.
-Ho
2019년 9월 1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