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아흔 아홉 번째 주제
당신을 앓는 시간은
끝없이 이어진다.
밤낮은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제 자리를 다투는데
온통 나는
당신을 앓느라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른다.
눈부신 줄도 모르고
온몸으로 당신을 좇는다.
아린 밤중에도
당신의 그림자를 안고
우는 일이 전부라서,
그래서 애처로운가보다.
나는 어느 때보다
당신을 향해 있는데도
늘 외롭다.
-Ram
1.
만나고 이야기했던 기간이 얼마나 되든
한결같은 스탠스는 도대체 뭐야.
그냥, 어쩌다 기회가 되서 그런거겠지.
그냥, 만나면 괜찮고 아니면 말고 그런거겠지.
순간 기대하게 되고 콩닥거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말이 되지 않고,
그러기엔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고.
매번 반복되는 순간들에 생각과 감정 또한 반복된다.
눈치없이 일렁이는 마음들도.
2.
식물을 키우는 일들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 집에는 스파티필름과 행운목, 그리고 높게 뻗은 선인장이 있는데
모두가 나 몰래 짠 듯, 하나같이 어렵다.
스파티필름은 잘 자라는 듯 싶더니, 해를 보지 못하는 쪽은 금새 고개를 숙여서
종종 화분의 위치를 앞뒤로 바꾸어줘야 하고,
행운목은 비교적 잘 자란다고 했지만 물을 엄청 먹지 않아서
내가 주는 물 족족 아래 화분 받침이 넘실거리고 심지어 넘쳐흐르기까지 한다.
그리고 높게 뻗은 선인장은 한 번에 3~4개의 잎이 나는데,
하루하루 길게 뻗다가 금새 끝이 안으로 구부러지고, 까맣게 말라죽는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긴 일러서 물의 양과 물 주는 기간을 조절해가며 고군분투 키우고 있다.
집에서 엄마가 키우는 식물들은 너무 많이 자라 바닥에 끌리고, 잎이 엄청나게 무성하기 바쁜데.
보기엔 쉬워보여도 직접 키워보니 쉬운게 아니다.
-Hee
생각보다 빨리 시들해진 해바라기. 고개 숙인 그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물도 주어보도 꽃병도 마련해봤지만 한 번 숙인 고개는 다시 해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것들중에 한송이 골라보셔요.”
튤립은 사봤고, 장미는 너무 식상했다. 그날따라 화들짝 풍성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해바라기가 마음에 들었었다.
처음엔 검은 포장지 속 노랗게 꽃 피운 해바라기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가득찼는데.. 어느날이었을까? 고개숙인 해바라기를 돌이키고자 애쓰는 일이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관계도 그런것이겠지 싶었다. 차라리 고개 든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바르게 말려보자싶었다.
머리가 아래로 향하도록하고 습기지지 않은 곳을 찾아 바르게 걸어주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이렇게나 빨리 마를줄은 몰랐는데 내 마음이 느린건지 해바라기가 무엇이든 빠른건지.. 야속해 할 틈도 없이 곱게 말라준 해바라기.
특별히 빈 와인병에 꽂아주니 제법 그럴듯했다.
-Cheol
'네 월급으로 감당 안 될 거야. 아픈 고양이한테 들어가는 돈이 한 달에 오십만 원이고, 장애인 큰언니한테는 그보다 두 배는 더 들어가거든. 알다시피 우리 집 가난해. 혼자 사는 아빠는 몇 년도 더 전에 퇴직했고 벌써부터 둘째 언니랑 내가 주는 용돈으로 겨우겨우 생활하셔.'
'정말 그렇게 밖에 말 못 하겠니? 내가 언제 너 돈 많아서 좋다고 한 적 있었어? 나 사회복지사야. 장애인이랑 가난한 사람들한테 일 년 내도록 둘러싸여 데여도 웃으면서 껴안아야 하는 게 내 일이라고. 거기에 한두 명쯤 더 늘어나는 거 신경도 안 쓰여. 조금 더 솔직해져 봐라. 그냥 싫으면 싫다고 그래. 내가 아무리 바보 같아도 나 싫다는 사람한테는 안 엉겨 붙어.'
'너 진짜 병신이야? 고작 우리 언니 몇 번 만나보고 평생 케어하면서 같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야. 나는 이미 삼십 년도 더 그렇게 살고 있는데도 미칠 것 같아. 거지 같다고. 이런 짐을 갖고서 누구랑 결혼 같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 부자도 아니잖아. 몇 개월만 지나도 너 후회해. 몇 년 더 지나면 도망가고 싶을 거고. 그렇게 되느니 그냥 시작도 않는 게 맞아.'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는 좋네. 너는 네 애인이 고작 그 정도라고 생각해? 너는 그럴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왜 네 마음대로…
그만하자. 일단 출장 다녀와서 다시 이야기해. 늦었으니까 오늘은 그만 갈게.'
몇 주간의 출장이 끝나면서 그녀와 나의 관계 역시 같이 끝났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끈질긴 연락에도 단 한 번을 답하지 않은 그녀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떤 이유를 들어도 괜찮으니 차라리 헤어지자는 말이라도 들었으면 했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면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어질 테고, 그녀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지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헤어지자는 말을 부러 하지 않은 것인지,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인지 한참 동안 생각했다. 출장이 끝나고 나서도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던 나의 마음에 대해서도. 멈출 수 없었던 열차에서 나를 밀어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일종의 안도감과 함께, 끝끝내 그녀와 함께하려 하지는 않으려 했던 스스로에 대한 씻을 수 없는 혐오감을 갖게 되었을까.
그녀가 보고 싶지는 않다. 이따금 생존 신고를 하듯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으로 충분했다. 나는 너 없이도 잘 지낸다는 못된 마음으로 생전 달지도 않았던 태그를 붙여가며 더 열심히 사진을 올렸다. 헤어진 것도 헤어지지 않은 것도 아닌 연애의 끝이 꼭 목 부러진 해바라기처럼 바람에 아무렇게나 덜렁거린다.
-Ho
2019년 9월 2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