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열 일곱 번째 주제
- 딸이 엄마에게
엄마,
내가 세상을 30년 정도
아주 조금 살아보니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
나는 아직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그저 나로 살고 있지만
엄마도 파도가 덮치듯,
그렇게 숨을 참고 갑자기 엄마가 되었겠지?
지나간 것은 잊혀지고
다가올 것을 기대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쉽지 않은 일인지
시간이 흐를 수록 뼈아프게 느껴.
우리가 서로
늙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눈에는 아직도 우리 엄마가
꽃분홍 원피스를 입어도 고운
30대 같은데,
내가 그정도 나이 즈음에 오고 나서 보니
많이 고생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생했어, 엄마
언제나처럼 늘 그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의 엄마로 계속 있어줘.
이만큼은 조금 욕심내도 될까.
-Ram
아직 자연스럽기까지는 숨이 턱턱 막히지만,
그래도 더 자연스러워질꺼야.
-Hee
좋아하는 말들 중에 그런 말이 있었다.
긴 시간이 바위를 깍아주듯이 그 자리에서 견디고 버티는것만으로도 성숙하게 될거란 이야기.
가끔 너무 힘들땐,
그냥 애써 버텨보자.
바람과 파도를 매번 견뎌내는게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거야. 긴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며 함께 웃자.
그날까지
서로를 놓지 말자.
-Cheol
재진에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왔고 왜인지 반갑지 않은 연락의 의도가 무엇일지 계속 생각했다. 짧은 인사에서부터 느껴지는 거리낌이 어디에서 왔는지. 몇 번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 느낌이 재진과 애인의 헤어짐에서, 그리고 헤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온 연락의 타이밍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이성 친구 사이라는 게, 알고 지낸 기간이 얼마 인지와는 관계없이 상대에게 애인이 생겼을 때는 연락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그건 굉장히 부자연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 몰래 품은 떳떳하지 못한 호감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별 수 없는 일. 사는 모습이 달라지며 재진과는 일 년에 고작 서너 번 만나곤 했지만 재진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다음부터는 그보다도 더 먼 사이가 됐다. 나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이해는 하지만 애인이 불편할지도 모르니 연락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여러 번 직면하면서 나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괜히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이십 년도 더 지난 친구 관계가 허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주 하는 연락도 아니고 일 년에 몇 번 묻는 안부 연락에서도 그런 식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서 이제 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오는 연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헤어짐을 위로한답시고 자연스럽게 술이나 한 번 사면 되는 걸까.
-Ho
2020년 2월 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