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열 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나는 한때 뒤쳐지면 섭할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중독이었다.


내가 가는 곳,

먹는 곳,

나의 느낌, 생각,

내 모습까지


모두 대단하지 않아도

'공유'라는 거룩한 이념 아래

알리고 싶었다.


소위,

모두가 말하는 인싸는 아니어도

못하는 것은 아닌 사람이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오늘 날의 페이지를 보았다.


한여름 휴가때

시원한 차림새와

초록빛 푸르름 아래

환하게 웃는 사진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정월대보름이고.(하하)


그동안

웃을 날이 없었다.


누군가는 걱정했었다.


내가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 같아

걱정했다고 했다.


자랑거리가 없었고

예쁘게 차려입은 날도 없었다.


출근,퇴근,회식,잠

단 네 단어로 압축되는

하루, 일주일, 몇 달을

이어보내고 난 것 뿐이었다.


내 손에 남은 것은

미뤄질 승진과

뒤늦게 끊어둔 (가지못한) 피부관리 티켓 정도였다.


웃으며 찍은 셀카가

언제적이었나

카메라를 켜지만,


내가 아닌것 같아

어색하고 슬픈 날이다.


나는 벌써 내가 아닌 것 같다.



-Ram


1.

사실 나는 별거 아닌 것에 대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주차장 안쪽에 절대 해가 들지 않을 것 같은 곳에 핀 고운 색의 튤립,

내가 사는 공간에 처음으로 (나를 위한) 정수기라는 것이 들어왔던 순간,

거진 10년동안 여러 곳을 전전하며 지내던 나와 늘 함께 챙겨다녔던 맥주모양의 커다란 저금통을 깨는 날,

외출하기 전 예쁘게 단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립스틱을 바르고 짬을 내어 찍는 내 모습,

처음으로 외국에서 인터뷰 가는 중에 내심 떨리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고 신기해서 찍은 회사건물,

길을 가다가 어느 집 주인 할아버지가 담벼락에 써 놓은, 무단방뇨에 대한 경고의 글과 함께 걸려있던 무시무시한 가위,

공항에서 나를 놓칠라 눈을 크게 뜨고 한 사람, 한 사람 주의깊게 보면서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모습,

무더운 여름에 빨갛게 핀 장미,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키가 큰 나무에 걸려있는 초록잎 따위들.


그리고 나는 시시때때로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추운 겨울에 귀마개를 하고 등산을 갔던 모습,

친구가 자취방을 이사해서 집들이를 간 후 그 친구의 옷을 빌려 잠옷삼아 입은 채 밤에 산책하던 모습,

아무 날도 아닌데 예쁜 옷을 입고 카페에 책을 챙겨 갔지만 핸드폰을 하는 모습,

오랜만에 동생과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런닝머신을 뛰기 전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

샤워 후 앞머리를 핀으로 올리고, 머리도 위로 높게 묶은 후 부모님집 쇼파에 기대서 다리를 아빠처럼(정말 기억도 안나는 어렸을 적에 찍힌 사진을 보면 아빠가 길게 다리를 뻗고 포개서 앉아있었다) 꼬은 후 앉아있는 모습,

대학교 기숙사 내 방 작은 책상에서 내 몸통만한 커다란 노트북으로 카모메식당을 보던 모습.


2.

정말 평범한 날들이지만 그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더 남겨두고 싶은 욕심이 많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때가 되면 그게 또 소중해서 사진을 찍자고 하고,

굳이 내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사진을 찍지 않는 친구를 만날 때, 혼자 사진을 찍자고 유난을 떠는게 싫어서 그 날은 사진없이 집에 돌아왔는데, 그게 또 뭐라고 말도 못 꺼내고 괜히 아쉬워서 후회되는 때가 있고,

남자친구가 굳이 내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거나 웃기거나, 또는 그냥 남겨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그 사진들을 같이 꺼내보며 이땐 이랬지, 저땐 저랬지, 하면서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과거의 시간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시간과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과 지내고 싶다.

무심한 순간들은 내가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면 곧 의미가 되는 순간이 되고,

누가 보면 정말 별일 없는 날에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특별한 순간이 된다.



-Hee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건 찰나의 내 외모뿐이라서, 우리가 이따금 서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든지 아프게 하든지 하는 못생긴 모습들을 찍을 수가 없어서


우리는 거울을 봐도 카메라로 자신을 찍어봐도 내가 소중한 사람을 얼마나 아프게하는지를 알지를 못해



-Cheol


우리 셀카 찍자.


그 말소리가 들리고 나서 한참 동안 찰칵 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났다. 한동안 노랫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엔 좀 자연스럽게 찍자. 대화하는 척해.


‘아 정말 그랬다니까?’


‘대박이네 대박’


‘와 사람이 어쩜 그럴 수 있어?’


찰칵 찰칵


이제 웃는 사진 찍자.


하하ㅏㅎ하하ㅏㅏ 흐헣핳


찰칵찰칵 찰칵 찰칵찰칵


핸드폰을 쥔 여자의 말 한마디에 한 사람이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나머지는 거기에 호응한다. 그리고 또 갑자기 이유도 없이 배를 잡으며 깔깔 웃는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그렇게들 한다고 들은 적은 있는데 실제로 보니 대단했다. 스스로 작가이자 모델인 사람들.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늘 어떤 충격을 준다. 그들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촬영한 사진들을 나중에 한 번 다시 찾아 보기도 할까.



-Ho


2020년 2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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