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열 아홉 번째 주제
나는 그저
마음이 시리도록
너를 좋아한 기억뿐인데.
모두가 그 시간들을
잊으라고만 한다.
소용없는 마음은
매일 밤낮을
너로 짓이겨 놓고,
나는 그제서야
허덕이며 울던 나를 본다.
나는 너에게
늘 올곧고 변함 없는
그림자이고 싶었다.
공기중의 어떤 입자라도 되어
곁을 맴돌고 싶었다.
소박한 욕심을 내비치면
그대로 내동댕이 쳐질까 싶어
나는 늘 바보로 보여지고 싶었다.
오랜 시간 담아온 마음이라
끊는 것도 오래 걸릴 줄 알았더니,
왠 걸.
바람도 하늘도
어제와 같은 냄새인데
네가 걸어오는 길에서는
다른 향이 난다.
나는 정말
너를 좋아한 죄 뿐인걸.
그걸 나만이 안 죄 뿐인걸.
-Ram
1.
일상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변화를 주는 것을 나름 좋아한다.
가장 흔한 일로는 아이폰 잠금 화면과 홈 화면 변경, 핸드폰 케이스 변경, 메신저 알림음 변경부터 시작해서 꼭 과일을 담는 것으로만 쓰던 그릇에 반찬을 담는 다던 지하는 그릇의 용도 변경, 화장대로 쓰고 있는 책상에 늘어져있는 섀도우를 몽땅 과감하게 첫 번째 서랍 안으로 집어넣고 꽂이형 통에 꽂혀있던 립스틱들과 브러쉬 등을 화장품 진열대 안으로 전부 넣는다던지하는 물건의 위치 변경, 잘 쓰지 않는 흔들의자의 자리를 창가 옆으로 옮긴다던지 하는 가구의 위치 변경, 부드럽지만 높아서 쓰지 않는 베개를 위치가 변경된 흔들의자에 등쿠션삼아 잘 쓰지 않았던 담요를 무릎에 덮고 노트북 사용하는 루틴의 변경, 횡으로 놓인 쇼파를 종으로 놓고 해변에서 산 커다란 라탄 돗자리를 거실에 새로 깔아놓아 얻는 집 분위기의 변경 등의 따위가 있다. 흔하지 않는 일로는 질투나 선입견 같은 부정적인 마음가짐의 변화이지만 크게 마음먹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흔하지 않는 일로 꼽았다. 사람은 변한다고 하지만, 내 자신이 스스로 변한다는 것 자체는 꽤 오랜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2.
생각해보면 나는 물건이나 가구 등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있는데 쓰지 않는 것들이 없도록 자주 살펴본다. 있는데 안 쓰면 뭔가 아쉽잖아. 몽땅 다 쓰든, 안 쓰면 누구를 주든, 버리든 하지. 그런데 먹는 것들은 예외다. 있어도 잘 안먹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냉장고에 있는 만두나, 커다란 소세지나, 쨈 따위들. 매일 먹는 것들만 먹으려고 하다보니 자주 안 먹어 버릇 한 것들은 고스란히 먹지 않게 된다. 먹는 양이 적어서 그런지 몰라도 안 먹어 버릇 한 것들도 활용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먹어볼 줄도 알아야 하는데 손이 잘 안 간다.
3.
서운한 것이 있으면 사실 서운하다고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서, 그 서운함에 못 이겨 다른 말들이 좋지 않게 나가기 마련인데 앞으로는 그러기 싫어서 서운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운하다고 말을 하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왜 그렇게 생각하냐, 였다. 적어도, '어이구 그게 서운했어? 서운해하지 마. 서운하게 했다면 미안해' 따위의 위로가 듣고 싶었는데. 그냥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마음을 먼저 다독여 주길 바라는 마음에 서운한 것들을 말한 것뿐인데. 그래도, 그래도. 표현에 서툴러서 그런 것일거야. 이렇게 말해보지 않아서 어색해서 그런 것일거야, 라고 생각하며, 다시 봐야 할 때는 그냥 웃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 감정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릴 것만 같아서.
-Hee
어려서부터 다부지기보단 유한 편이었고
모질기보단 인정이 많은 편이었다.
유복하시고 인정많았던 할머니와 지낸 영향이 컸는데
어느날 문득 다부지고 독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살좋게 살게 아니라
각지고 다부지게 사는 삶
좀 더 갈고 닦으며
깍쟁이까지는 아니어도
군더더기 없이 살겠다는 맘
-Cheol
1.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도시에서 홀로 여행을 하는 나는 평범한 일상에서와는 다르게 변한다. 그게 꼭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지난여름 파리에서 처음 보는 심심한 사람들 몇몇이 해지는 걸 보며 술을 한잔했던 일도, 자정을 넘어 첫 차가 운행할 때까지 무섭다던 유럽의 밤을 술 마시며 지샌 일도 지나고 보니 도무지 내가 했던 일 같지가 않다. 한국에서는 가본 적도 없는 클럽을 가보고, 재즈 바에 들렸다가 조용한 새벽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오고. 나는 그게 서른 가까이 나이를 먹으며 처음 저지른 일탈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조금 더 대담해진 것 같고,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전혀 꺼려지지 않고, 조금 더 열린 내가 된다고 해야 할까. 얼른 다시 여행을 가서 그곳의 내가 되고 싶다.
2.
사람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스스로는 아주 작은 계기로도 갑작스레 확 변하기도 한다. 아빠에게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대단히 큰 변화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빠에게 난데없이 고양이 사료를 집으로 가져오라는 말을 들으며 조금 놀랐다. 쥐약을 섞어서 마당에 두려고 그러시나, 걱정되는 한 편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없어 일단 집에 있던 사료를 조금 챙겨 가져갔다.
요즘 매일 부모님 식당 자재 창고로 찾아오는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단다. 내쫓아도 내쫓아도 자꾸만 들어와서 울길래 해산물이나 고기를 조금 삶아서 줬더니 무척이나 잘 먹는다고 웃으며 말하는 아빠의 표정이 낯설었다. 명절 동안에 며칠이나 가게를 비워야 되니 그간 먹을 사료가 필요했다고. 너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양이를 내쫓기 위해 쥐약을 타서 줄 것 같은 분이 어쩌면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엄마가 그랬다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집에 맡긴 고양이와 나보다 더 열심히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내가 챙기지 못한 간식을 직접 사와 먹이기도 한다. 아빠가 방 안에 고양이를 들이는 것을 싫어하니 당신이 거실에 나와 고양이와 같이 잠을 잘 정도로 엄마는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그런데 며칠 전에도 짐승은 짐승답게 키워야 한다느니, 짐승에게 정을 주면 안 된다느니 말하며 밥을 먹다 나와 말다툼을 했던 아빠가 고작 며칠 밥 굶는 게 걱정돼 직접 고양이 사료를 챙긴다니까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3.
요즘은 퇴근하자마자 고양이를 보러 식당으로 간다. 밥을 놓아둬도 사람이 물러나기 전까지는 다가오지도 않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녀석이 이제는 손에 올려둔 음식을 앞발로 채서 물고 가기도 한다. 주먹만 하던 녀석이 이제는 꽤 자라서 양손을 모두 펼쳐 붙인 것만큼은 커졌다. 고양이는 고양이라고 사람을 경계하다가도 끈을 이리저리 흔들면 정신 잃고 뛰어와 발랄하게 노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 털색이 세 가지인 삼색 고양이는 유전적으로 99% 암컷 고양이라는 말을 해줬더니 신기한 표정을 짓는 엄마 아빠의 표정도 너무 웃기고 귀엽다.
-Ho
2020년 2월 1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