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스물 아홉 번째 주제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그런 물건이 있는 것처럼,
채 떨어지기 전에
채워놓아야 하는 물건이 있다.
그렇게 하나, 둘
의미없는 것들을
사서 모으다보면
내가 아주아주 작은 존재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조잡한 물건들을 붙들고
무엇하나 편하지 못한
불편함 속에 눕는 것.
그게 곧 나의 안정이라는 것이
한없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
그렇게 나도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어떤 존재가 되어간다.
허비하는 시간만큼
공허한 사람이.
-Ram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 날엔 꽃무늬 블라우스에 그렇게 꽂혔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내 눈이 가는 꽃무늬란 꽃무늬 블라우스는 사고 또 샀다.
처음에는 7일 내내 다른 옷들을 입어도 될 정도여서 웃겼는데,
어느새 정신차려보니 7일은 무슨.
2주를 입어도 더 남을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그리고 계절이 지났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회사원이 되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에 있는 모든 시청이나 구청. 관공서, 공사공단들을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그때 내 복장은 치마정장이였다.
치마정장에는 꼭 하이힐을 신고 싶었던 내 욕심에 하이힐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되니 생각보다 내 시간이 많이 사라져버려서
온라인으로 눈으로만 보고 하이힐을 사버렸더니,
이게 뭐야. 버리는 게 반이였다.
보기엔 라인도 잘빠지고, 너무 예쁜데, 발이 너무 아파 한 번 신고 버린 힐도 있었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울정도로 예뻐서 억지로 두어번은 더 신고 역시나 버린 힐도 있었다.
예쁜 디자인에 플러스로 편안하게(사실 하이힐에서 편안함을 찾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신고 다니던 힐은 역시나 손에 꼽았다.
옷과 구두들의 쇼핑이 이제 질렸을 때쯤
(몇 년을 반복하다보면 디자인이고, 패턴이고 다 비슷비슷한게 보여서 흥미를 잃는다)
귀걸이로 눈길을 돌렸다.
귀걸이는 마치 야금야금 군것질을 하는 것처럼 생각보다 저렴한 것들도 많았고
온라인으로 쇼핑을 해도 실패할 확률이 적었다.
부모님이 튼튼하게 낳아주신 덕분에 금이고 은이고 그런 귀걸이말고도
정말 아무 귀걸이나 거뜬히 착용할 수 있는 귀를 가진 것도 한 몫 했다.
그래도 나름의 귀걸이 쇼핑기준은 있어야 하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귀걸이들과 똑같은 모양만 아니라면 사보자, 라는 기준을 정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수만가지 종류의 귀걸이가 있지 않은가.
이건 거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냥 다 사자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옷은 주변 사람들이 봐도 딱 내 스타일이라고 할 정도로 나만의 스타일이 정해져있었고,
그 틀을 깨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에 반해 귀걸이는
내게 어울리고 안어울리고 생각할 필요없이,
새로운 스타일을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던 것이라 그냥 정말 이쁘면, 새로운 것이면 산 것 같았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다시 또 하이힐 욕심이 도졌다.
여긴 항상 여름이라 앞 코가 막힌 하이힐보다 샌들을 매일 신고 다녔는데,
힐이 높은 샌들을 찾던 와중에 우연히도 기가 막히게 편안한 브랜드를 찾아버려서
주말만 되면 신상이 나왔는지, 내가 못 본 샌들이 있는지 방앗간처럼 그 샵을 찾아갔다.
그리고 쇼핑몰마다 그 브랜드의 샵이 있었는데 샵마다 또 가지고 있는 재고가 달라서
새로운 디자인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제일 최근에 산 분홍색 힐을 한 번 신고 출근하고 난 후
코로나바이러스가 아시아에 심각하게 확산되어 말레이시아 정부는 락다운을 시행했고,
한 달 내내 힐은 신지도 못하고 맨발로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어느새 락다운은 야금야금 3번째 연장이 되었고, 다행인지불행인지 내 쇼핑은 또다시 멈춰졌다.
그리고 조금씩 온라인 쇼핑을 해봤는데, 역시 택배천국 한국과는 다르게
이곳은 해외직구하는 것마냥 잊을만하면 택배가 오고,
그것도 샵마다 천차만별이여서 일주일은 기본이고, 2-3주 걸리기도 한다.
또한 집에 꼭 있어야 택배를 받을 수 있다. 집에 없으면 다시 가져가버린다.
훙. 이런저런 이유로 흥이 지속되지 않는다.
덕분에 적금통장은 하나 더 늘었다.
-Hee
빨간배낭 하나 메고 손에 10만원만 쥔 채 서울역에 도착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다 되었다. 찜질방, 고시원 생활에서 전세집으로 오기까지 사실은 항상 결핍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사고싶은 것은 또렷했는데...
- 아이패드 12인치, 맥북프로 13인치 터치바형, 델(Dell)의 25인치 2K 모니터, SONY의 플스4, LG전자의 55인치 OLED TV, VR(valve index)기기와 고성능 컴퓨터, 내가 인턴시절부터 꿈꾸던 IKEA의 책상과 모니터 암(arm) 등의 부속부품들.
전자기기에 둘러싸인 것 같아도 하나 하나가 매 순간 순간을 넘어오며 내 삶에 새긴 중요한 이정표였다. 둘러보면 다 좋은 것들인데.. 사실 한번 살 때 좋은 걸 사야 나중에 추가지출이 없다. 불필요한 소비는 사소한 생활습관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매 순간 작은 목표를이루고자 노력하다보니 불필요한 소비도 자연스레 줄었지 않나 싶긴 하다.
이제는 테슬라 모델Y.
30대에게는 꽤나 부담되는 전자제품이지만..
새 목표를 향해 건강히 달려보자.
-Cheol
11시 정각이 되자마자 서버는 터져버렸고 큰마음 먹은 텐트 구매는 실패해버렸다. 다들 어찌나 그리 빠른지, 사이트 서버가 터져서 나는 접속도 되지 않는 와중에 어떻게 구매를 할 수 있는지. 씁쓰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충동적인 소비가 내 의지와는 별개로 중단되었다는 사실이 어떠한 안도감으로 되돌아왔다.
그래, 혼자서 캠핑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큰 텐트가 왜 필요해. 어차피 텐트는 소모품인데 비싼 텐트라고 사고 나면 애지중지할 테고 그러면 사용하면서도 늘 불편한 마음일 거야. 못 산 게 다행인 일이야.
쓴 마음을 달래기 위한 합리화이기도 했고 일정 부분, 아니 거의 대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텐트였지만 분명 나에게는 과하게 컸고 또 비샀다. 품절이 된 제품 구매 평에는 다른 실패자들의 불만과 욕이 난무했다. 나도 아쉬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불가피한 일에 대한 불만을 굳이 글로 남길 만큼 커다란 아쉬움은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텐트 구매 실패는 그렇게 마무리된 줄로만 알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일 년이나 넘게 백만 원 남짓한 다른 텐트를 살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 새로운 카메라 구매를 위해 포기했는데 삼백만 원 가까이하는 텐트를 (아무리 컬래버레이션에 몇 동 생산되지 않은 한정판이라 그래도) 그리도 쉽게 살 결정을 해버렸으니 이전까지 고민했던 백만 원이라는 돈이 한참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삼백만 원은 사고 싶었던 카메라와 한참 고민했던 텐트를 모두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나는 이미 통장에 삼백만 원이 있고 마침 주식 배당금도 들어왔다. 돈의 제 목적에 맞게 카메라를 사든, 고민했던 텐트를 사든 뭔가 하나는 질러야 한다는 충동이 온 주말을 휩쓸었다. 이미 알고 있는 텐트와 카메라의 스펙을 다시 정리하고 리뷰를 찾아보고 다시 또 찾아보며 밤을 지새우다 대체 왜 이러고 있는지, 왜 저축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다시 또 나를 결핍으로 내모는지 자조적인 마음으로 검색을 중단하고 잠에 들었다. 이미 주말은 다 지나버렸지만 다행히 충동은 가까스로 멈춰졌다.
enough is enough. 꽤 좋아하는 브랜드의 슬로건이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뜻이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뜻이 돼 나를 저지해 줬다. 안돼. 더는 무엇도 살 생각을 하지 마. 일단 잠이나 자라고. 지금은 말고 필요할 때, 그때 사라고.
-Ho
2020년 4월 2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