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크랩"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스물 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1.

식당에 가면

새우 껍질을 까서

내 앞 접시에 먼저 놔주는 사람.


그 사람의 그런 면이 좋았던 거다.


그 수고스러움의 합을

내게 먼저 주는 부분이.


2.

게, 대게, 킹크랩 같은

갑각류 음식을 매우 좋아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잘 먹는 방법을 모른다.


주로 누군가가 살을 발라주거나

먹기 쉽게 손질해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저 음식은 나를 위해

누군가의 애정이 묻은 거라서.


3.

감정도 사람도

게 껍데기 같은 단단한 껍질로 되어 있다.


사실 엄청 크고 대단한 것 같아 보여도

다들 알량한 자기 속내는 잘만 숨겨두거든.


막상 뜯어보면

별 것 아니겠지만,

또 그래서 뜯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아니겠어.


가끔 속이 텅텅 빈 집게발을 들고

속을 헤집어보는 나처럼 말야.



-Ram


1.

30년을 넘게 살면서 우리 가족 식탁에 킹크랩이 올라온 적이 없다.

일단 치킨도 젓가락으로만 드셨던 아빠는 어떤 음식을 먹기 위해

양 손을, 손가락들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고,

덕분에 나랑 동생도 자연스럽게 킹크랩을 즐겨먹지 않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로 킹크랩을 먹고싶었던 엄마는 이모나, 친구들이랑 먹고 들어오셨다.

그 후 성인이 되고, 킹크랩을 먹으러 가야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익지도 않고 먹기가 어려웠다.

요령이 없던 덕분에 게 다리는 얼마나 딱딱한지, 내 맘대로 잘라지지도 않았고

여기저기 꼬챙이로 엄한 게다리만 쑤시다가 그냥 먹기를 포기하기 일쑤였다.

같이 나온 랍스타는 그나마 살이 발라져 있어서 먹을만 했지만,

킹크랩은 나에겐 아직도 어려운 음식.


2.

게장 역시 마찬가지다.

젓갈류나 게장류 또한 집 식탁에 올라온 적이 없어서

내게 친근한 음식은 아니다.

그래도 안면도에서 먹었던 전혀 짜지 않았던 간장게장의 맛과,

광주에서 먹었던 낙지젓갈의 맛은 잊지 못할 기억이지.


3.

킹크랩보다는 회!

갑자기 숙성회가 먹고싶다.

예전에 망원동에서 먹었던 숙성회가 갑자기 생각났다.

자그마한 회 한 접시를 가운데 두고

열심히 술을 잔에 따라마시며 웃었던 그 때.

다신 돌아갈 수 없을 그 때.



-Hee


누군가에게 요리를 대접해줄 때 중요한 건 정성이야말로 으뜸이라지만, 태어나서 아직 한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을 찾아 새로운 맛의 경험을 나누어 보는건 어떨까.. (이렇게나 식상한 내용의 시작이라니..)


사실 친구들끼리의 모임이라든지 회사에서 대접하는 회식이라든지 대학생활과 사회 초년생을 지나오면 이런 저런 음식들을 먹어보게 되면서 슬슬 웬만해서는 안먹어본 음식이 없게되는데... 이 킹크랩이란 것과 랍스터는 나에게는 정말 정말로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먹어볼 일이 없는 음식이었다.


사실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글 주제를 받아봤을 때부터 난생 먹어본 적 없는 킹크랩으로 무슨 글을 쓰나 고민스러웠는데, 지금 내가 목표로 하는 것들을 하나.. 둘.. 이뤄가다보면 언젠가 곁에 함께 하게되는 이와 먹어볼 날이 오지 않을까! 각자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 목록을 만들어보고 하나 하나 함께 채워나가는 일이 서로에게 소소히 기쁜 일이 되진 않을까?


마치 '내가 목표로 하는것들을 이룰 수 있을까?'하고 매번 의심하는 것처럼, 그런 일이 생길까 싶지만.. 운이 좋길 바라본다.



-Cheol


러시아에 킹크랩 철이 돌아오면 같이 가자.


러시아를 왕복할 돈으로 더 맛있는 걸 사 먹는 건 어때?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이래서 우리 언제 정들어.


나는 한 끼 먹는데 쓸 수 있는 금액의 마지노선이 정해져 있어서, 그렇게는 어렵겠는데?


러시아에선 킹크랩이 저렴하데. 항공권도 음식값에 포함시키는 건 아니지?


왜 아니겠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킹크랩을 그리 좋아하지도 러시아를 딱히 가보고 싶지도 않단 말이야.


킹크랩을 산지에서 먹어본 적은 없잖아. 혹시 알아? 진짜 맛있는 걸 먹고 나면 앞으로 좋아하게 될지 모르잖아.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그 애의 가당찮은 말에 교묘히 설득되는 것 같았다. 해산물은 입에도 대지 않던 내가 어느 순간 스시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매주 두 끼 정도는 스시를 먹으며, 스시를 먹기 위해 당일치기로 일본을 왕복하는 일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됐으니까 말이다. 딤섬을 먹으러 홍콩에 가고, 쌀국수를 먹으러 베트남에 갈 수도 있는데 킹크랩을 먹으러 러시아에 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래. 가자.


결국 가자는 대답을 했다. 올해에 못 가면 내년에라도 꼭 가자고 말했지만 정말로 맛있는 킹크랩을 기대하고 한 대답은 아니었다. 현실감 없는 대화가 우리에게 현실이 될 때, 더 특별한 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한 말이었다. 잘 쪄진 킹크랩처럼 뜨겁고, 탱글탱글하고 단 맛이 나는 마음이었다.



-Ho


2020년 4월 1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