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서른 두 번째 주제
우리가 고즈넉한 한옥집에 앉아
지나가는 시간을 붙들고
있던 때를 기억할까,
그때 마침 밤 기운이 차게 오르는
어떤 봄인지 가을 곁인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즐거웠다고.
가끔 내 추억에서
행복한 한 때로 자리잡아서
좋았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
가게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마늘빵을
야무진 손으로 뚝뚝 잘라주던
그 때의 우리가 그립다고.
마늘빵을 보면
그 날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서
웃는다.
네가 늘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Ram
1.
케이크 먹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로 말했더니,
어느 날 냉장고에 케이크가 있었고
마른 오징어 먹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로 말했더니,
어느 날 냉동실에 마른 오징어가 있었다.
2.
친구랑 삼거리 빵집에서 마늘빵 산 후에
지금은 사라진 전통카페에 가서
전통차와 함께 먹던 마늘빵도 좋았다.
3.
몇 년 만에 마늘빵이 너무 먹고 싶었던 어느 날,
운동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갔어.
네 생각이 나서 네가 좋아할 만한 다른 빵들도 잔뜩 집었지.
이것저것 마구 집어 들다 보니 내 두 손으로 겨우 들 정도가 되었고,
너를 만나러 가는데 넌 마중 한 번 안 나오더라.
혹시나 싶어 내가 빵을 먹고 싶다고, 마트에 가고 있다고,
많이 살 거라고, 별의별 말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눈치가 없었던 건지, 내가 너무 알아듣게 말하지 못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너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고,
네가 밖을 나오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어서
내심 기대했는데.
마중 한 번 안 나오더라.
그게 아직도 기억이 남네.
네가 마중 나오길 바랐던 날들에
마중 한 번 안 나오는 널 보면서
기대를 접어야 했던 내 마음이.
그 날들이.
-Hee
오랜만에 빵집에 들렀다 눈에 들어오는 마늘빵.
바삭바삭한 겉 표면에 부들부들 달달짭짜롬한 마늘빵.
마늘빵은 언제 먹든 무난해서 한번씩 손에 집히기는 했는데, 생각해보면 마늘빵이 주인공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태생부터가 말라 굳어버린 빵을 재활용하기 위해 태어난 요리라지만 기꺼이 혼자서도 작은 간식역할을 해내는 마늘빵. 뿐만아니라 어떤 요리와 함께라도 한다면 요리의 구색을 더해주는 귀한 마늘빵.
오붓한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잔과
정갈한 파스타, 스테이크와
달콤 짭짜롬한 마늘빵만 곁들여진다면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순간일까
-Cheol
학교가 끝나고 돌아와 tv를 켜면 제이미 올리버가 음식을 만들고 친구들과 나눠먹는 프로그램이 재생되고 있었다. 요리에 대한 관심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올리버가 만드는 음식이 어떤 맛인지 너무 궁금했다. 그가 사용한 향신료와 식재료를 구할 수도 없었고 조리 스킬도 도구도 없었기 때문에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 간단하다 싶은 음식들은 곧잘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잘린 바게트 빵에 반으로 가른 마늘의 단면을 문지르고 파슬리를 뿌려 구워내는 마늘빵이 내가 만들어본 첫 음식이었다. 다진 마늘과 버터, 설탕을 버무려 올린 뒤 구운 리얼 마늘빵을 주로 먹는 한국인들 입맛에는 마늘 향이 미세하게 풍기기만 하는 빵이 어째서 마늘빵인지 수긍하기도 어려운 맛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게 맛있는 거라 믿으며 좋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Ho
2020년 5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