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서른 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내 수능 점수는 완전

몰락 그 직전에 있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내가 겪은 해의 수능은

최악의 난이도 조절 실패로 물수능,

표준점수 폭락의 해였다.


그리고 난 고등학교 3년을 통틀어

가장 낮은 언어점수를 받아보았다.


문과생이면서.하하


우리집 사정상

지방 끄트머리에서 재수를 하기엔 무리였다.

사실 나조차도 내 점수로 재수를 한다고 해서

어디 대단한 대학에 지원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내신 점수는 어디 내놓기 부끄러워

정시에 올인했던 내가,

아무 문제도 없었던 수능을 그렇게 망친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별 것도 아닌 일들이다.

그 때에 내가 언어를 잘 봤어도 나는 이렇게 자랐을 테니까.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원했던 대학보다 한참 안정권 대학을 지원했고,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3지망까지 쓰는 '다'군에 지금의 대학을 지원했다.


다들 뭐 포기하는게 낫다는 식이었는데,

거짓말처럼 거의 마감 직전에 합격해서

문 닫고 들어온 사람이 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들어온 대학에서

많이 방황하였고, 울고, 밤을 새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지금의 직장에 다니기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순간들을 도박에 맡겼다.


"별 수 없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난 정말정말 미련이 많고 걱정도 많다. 후회도 많고)


어찌 되었건 잘 되리라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 뿐이다.


당장 지금이 망친 것 같아도,

어떻게든 살아내진다는 것은

뭐,

해볼만한 도박이라는 것이다.



-Ram


1.

어느날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은 적당히 마실 만큼 마셨고, 자리를 옮겨 술을 더 마시기 싫었던 여자친구는

남자친구를 블랙잭 할 수 있는 펍에 데려갔다.

평소에 심리전에 강한 편이였던 그 남자친구는 딜러와 심리전에 재미붙이며

블랙잭에 눈을 떴고, 매번 따고 잃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빠져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는 인연이 다해 헤어졌고,

헤어졌지만 잠시동안 서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친구로 지냈던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는

각자 친구와 그 펍에 갔다가 마주친 적이 몇 번 있었고, 같은 테이블에서 게임을 하고 술을 마셨다.

이후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는 더이상 친구로 지내지 않을 정도로 등을 돌렸고,

남자친구는 헤어진 여자친구가 소개해준 그 블랙잭 펍을 평일에도 퇴근 후 자주 가곤 했다.

하루는 남자친구가 회사에 입고 오지도 않던 정장을 입고 왔고,

남자친구의 회사 동료는 오늘 무슨 날이냐며, 갑자기 왜 멋있게 입고 출근했냐고 물어봤다.

남자친구는 오늘 자기가 자주 가던 블랙잭 펍에서 블랙잭 대회가 열리는데 거기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한테 꽤 중요한 대회라고 하면서.

그 남자친구는 아주 가끔 헤어진 여자친구의 생각에 잠기긴 하지만

곧 딜러에게 패를 더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2.

가끔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될 때

종이를 작게 오린 후 몇 장 그 곳에 깨알같이 메뉴들을 각각 적어서

보이지 않게 두 번 접은 후 바닥에 던지든, 통에 넣든 잘 섞이게 한 후

하나를 뽑아보자.

근데 그걸 나랑 하면 어차피 뽑은 메뉴는 결국 먹지 않는다는 게 함정.


3.

망설이고 고민될 땐 그냥 하고 말지 뭐.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나처럼.


4.

도박을 하고도 운명인 줄 착각하는 사람처럼.



-Hee


한 장, 한 장,

내 손에 쥐어지는 카드와

정해진 규칙 속에서 고민한다.


모든 건 운에 달려 있지만

그 운을 이어갈지 선택하는 건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그리 좋지 못한 패를 받았다 하더라도

게임에 참여한 이들 중 가장 좋은 패일 수도 있다.


꽤나 좋은 패를 받았다 할지라도

언제나 나보다 더 좋은 패가 있을 수도 있다.


착실히 걸어온 길을 단 숨에 건너뛸 수 있다는 유혹.

그 도전에 임할지 말지 선택하는 건 그야말로 도박.


어떠한 결과이든 도박에 임한 각자가 감당할 뿐이라지만

결국 선택에 임한 사람이 다 감당해야할 몫이다.



-Cheol


태균이 내게 돈을 돌려받을 계좌번호를 날짜가 다 되도록 물어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태균이 도박을 했겠구나 짐작했다. 돈을 꿔간 이유부터 영 미심쩍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화는 받지 않고 쓴소리가 담긴 메시지도 깔끔하게 씹혔다. 그래도 동창이라고 한 번은 돌려서 말했는데 지나고 보니 태균에게 돈을 빌려준 모두가 했을 법한 너무나 합당한 말이어서 태균에게 아무런 동요도 일으키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니 짜증이 조금 치밀었다.


몇 천 정도는 곧바로 대출이 가능한 직업을 갖고서도 집 보증금 천오백을 잃었다며 동창들에게 전화를 돌려 단 돈 몇 만 원이라도 돈을 꿔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말 몇 마디 나눠본 적 없었기 때문에 설마 나한테까지 전화가 올까 싶었는데 어느 날 늦은 밤에 전화가 왔다. 구구절절한 이유가 어떻든 깔끔하게 이야기를 끊으려 했는데 울먹이는 목소리와 아기 분유값이 없다는 말에 마음이 기어코 넘어가버렸다. 그 애의 조용하고 순박해 보였던 인상도 한몫했다. 십 년이 지났는데도 작게나마 남아있는 인상을 덜컥 믿어버린 나의 잘못이었다.


돈을 빌려준 내가 되려 초조한 마음이 들어선 안 되는데. 그 애가 잃은 돈보다 내가 그동안 주식으로 잃은 돈이 훨씬 더 큰데도 선뜻 돈을 빌려주고 그래선 안 되는 일이었는데. 내가 그저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다른 친구 몇몇은 집을 샀고 태균은 아기를 팔아서까지 돈을 꾸고 잠적했다. 태균과 친했었던 친구에게 태균이 만약 도박을 성공하더라도 빌린 돈을 돌려줄 애는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 태균이 지금 적어도 나만큼 초조한 마음이긴 할까 궁금해졌다. 이번 달이 다 지나도록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그 애가 감당해야 할 짐이 크든 작든 끝끝내 도박의 구렁텅이에서 평생 빠져나오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저주라도 남길 생각이다.



-Ho


2020년 5월 2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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