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서른 세 번째 주제
우산 하나
가수 윤하가 피쳐링하고 한때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에픽하이의 노래 중에 우산이라는 곡이 있다.
최근에는 윤하의 단독곡으로도 나오긴 했었지.
나의 가장 감수성이 폭발했던 2008년도의 곡.
지금 다시 읽어보면 속칭 오글오글한
손발이 저릿한 가사이지만
당시에는 내 감성을 저만큼 잘 드러낼
멜로디와 가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의 울 것 같은 여자 목소리
소나기마냥 무거운 음악소리
18살밖에 안 된 내 인생이 무엇이 그리도
음침하고 축축했는지는 모르지만 (하하)
나름대로의 아프고 슬프고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감칠나게 곁들일만한 감성이었나보다.
24살인 지금도 사실 그렇다.
지금도 나는 방황하고 가장 축축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힘든 시기를 겪었고
남들처럼 돌아보면 별것아닌 시기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힘든 것은 정말로 힘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소나기와 맑음에 관계없이
그럼에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의 노래들이 계속해서
재해석 되는 것 처럼
혹은
별것도 아닌 우산 하나가
노래의 제목이 되는 것 처럼,
그리고 내가 다시 18살의 18번 곡을 찾아 듣는 것 처럼
-Ram
1.우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순간, 내 두 손엔 우산이 없었다.
예전에 내 생애 두번째 마라톤을 나가던 그 순간.
나이트레이스라서 오후 늦게 집에서 나왔다. 하늘이 심상치않다고 생각했는데,
마라톤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뛰는건 무리라고 생각해서 우비를 입었다. 아마 그때가 난생처음 우비를 입었었지 않았을까.
우비의 신비로움을 느끼며 탕! 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대공원 안은 컴컴했다. 딱 러닝하기에 필요한 조명만 켜놔서 좌우는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2km쯤 지났을까.
열심히 올랐던 언덕을 다시 내려오고 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났다.
끼약 끼약. 부시럭 부시럭. 원숭이들이 있는 우리를 지나고 있나보다,했다.
그리고 좀 지나자 동물들의 배설물 냄새가 났다.
동물원 가운데를 뛰고 있는 내 자신을 다시한번 실감하며 결승선을 향해 뛰고 또 뛰었다.
드디어 결승선이 눈 앞에 보이고, 있는 힘껏 전력질주를 해 당당하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완주하고 나서 맞는 비는 정말 시원했다.
첫사랑과 헤어졌던 그 순간.
시간은 저녁 9시가 막 지나고 있었고, 나는 내 방에서 전화로 이별통보를 받았다.
사실, 그 전에도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나이도 지금보다 훨씬 어렸었고, 서로의 감정에 대해 서툴렀고,
여러가지 오해들로 인해 쌓였던 것들이 폭발하면서 그 아이는 내게, 이제 그만 만나자고 이야기를 했다.
분위기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전화로 이별을 고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당황하며 횡설수설하였고, 결국 전화는 끊겼다.
정말 얄밉게도 헤어지는 그 순간엔, 그동안의 나빴던 기억들보다는 행복했던 기억들만 생각이 났고,
그 때문에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으며, 조금 전에 들었던 이별의 말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슬픔에 복받쳐 울고 있는 그 때, 엄마가 왜그러냐며 내 방문을 열었다.
그 아이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는게 괜히 부끄러웠고, 그 이유로 울고 있는 내 자신을 왠지모르게 엄마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집 밖에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처량맞게 비를 맞고, 내 얼굴 위엔 콧물과 눈물 그리고 빗물이 섞여 물난리가 났다.
그렇게 한 두 시간쯤 빗속을 울면서 돌아다녔다. 그리고나서 공중전화로 뛰어가 친구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했다.
그 아이와 내가 결국 헤어졌다고.
그 아이와 나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내 마음 속에 첫사랑으로 남았다.
저번주에 합정에서 미팅이 있었다.
그런데 합정역에서 내리고 보니, 정확한 미팅장소는 상수역 쪽이였다.
에잇, 그냥 나온김에 걸어가자고 생각해 걷고 있는데 비가 내렸다.
맥북을 들고 있었지만 다행히 가방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맥에 중요한 자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태라 비가 여기서 조금만 더 오면 우산을 사야지! 라고 마음을 먹고,
가져온 가디건을 머리에 히잡처럼 뒤집어 쓰고 걸었다.
평일 오전에 합정 골목은 한가했다.
어떤 골목에 진입했는데,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좌우에 사람이 사는 주택인지, 아니면 회사인지 헷갈리는 건물이 있었고, 시원한 비바람이 살짝살짝 불었다.
괜히 기분이 좋았고, 설레였다. ‘아, 이런 기분을 앞으로도 계속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아 근데 이 기분의 원인이 뭐지?’ 라고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괜히 나를 설레게 한 그 원인은 바로 평일 오전에만 느낄 수 있는 거리의 한가로움이였다.
정답을 찾아 즐거움이 한층 더 업되어 결국 미팅장소까지 우산을 사지 않고 비를 맞으며 신나게 걸었다.
2.여전히 나는 작은 3단우산을 예쁘게 정리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장우산을 들고 다닌다.
3.몇 년 전, 나랑 같이 살았던 밍(일명)은 우산이 없을때, 아이패드를 머리 위로 들어, 그렇게 얼굴에 물이 닿지 않게 다녔다.
그 당시 아이패드가 맨 처음 출시되었을 때여서 나는 경악을 금치못했었다. 요즘 밍이 보고싶다.
-Hee
비가 내리고 난 오후의 캠퍼스
투명한 나의 우산 속으로 노란 낙엽 하나가 들어왔다.
계절변화에 무심한 나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가을이 내 품으로 찾아 들어왔다.
-Cheol
이번주도 휴재합니다.
-Min
2014년 8월 24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