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서른 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엄마,

나 요즘도 잘 챙겨먹어요.


끼니 거르지 않고

출근길에 마실 것도 사놓고

인스턴트 덜 먹어요.


쌀도 반찬도 아직

넉넉하게 있어요.


주말이면

나도 집 주변을 거닐고

운동도 틈틈이 해요.

말끔하게 해놓고 살아요.


외롭지 않고

즐겁게 잘 지내요.


그러니까,

엄마도 제발


아프면 병원가고,

친구들하고 수다도 떨고,

좋은 곳도 가보고,


그렇게 지내요.


-


이렇게 말 못해줘서

미안해.



-Ram


20대가 되면 한 번 쯤은 자취에 대한 로망,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로망,

독립에 대한 로망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그런 로망이 전혀 없었다.

학창시절 내내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 처음 밖에서 살 게 된 건,

21살때 여름학기가 끝나자마자 춘천에 가서 디자이너언니랑 같이 살게 되었을 때였다.

작은 원룸이나 투룸이 아닌 일반 아파트에서 살았고, 온전하게 혼자만 사는 게 아니였기 때문에,

딱히 자취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집이 아닌 곳에서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 정도로만 생각되었던 그 곳은

어떤 가구를 사다 들여놓거나, 집을 꾸미고 싶다는 욕구가 조금도 없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서

직장 주변에 처음으로 원룸을 얻었을 때도,

정말 실용적인 용도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되지 않았다.

이후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계기도,

이동시간을 최대한 줄여 이동하는 데에 에너지를 많이 쏟지 않기 위해서,

남은 에너지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오롯이 더 써야 겠다는 그 생각만으로 방을 구했다.

잠을 자기 위해 잠시 빌려 쓰는 공간일 뿐이였다.


월세를 내고 사는 공간은 완전한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매우 컸지만

뒤늦게나마 내가 오랜 시간을 어떤 공간에서 보낸다고 실감이 났을 때,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는 것 또한 하나의 삶의 형태라는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

그 공간에 조금씩 정을 붙여 인테리어를 한답시고 한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자석들이나 사진들을 냉장고에 붙인다거나,

작은 화병을 사서 꽃을 꽂아 둔다거나,

아끼는 엽서와 좋아하는 작가의 달력을 벽에 붙이는 게 다였다.

나중에 어떤 집이 될 지 모르겠지만 온전한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집에서 살고 있을 땐

(어쩌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구일지도 모르는) 테이블부터 골라봐야지.


2.

아무리 비싼 가구들과

누가봐도 예뻐보이는 인테리어가 아주 잘 된 집에 살고 있어도

그 안에 살고 있는 '내'가 불행하다면.


3.

공간도, 사람도 모두 경험해볼수록 보는 눈이 달라지는 법이지



-Hee


나 혼자 삽니다.


아무래도 모든게 부족했던 대학생활 시절이 연상되었고 결혼 전에 잠시 거쳐가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룸메이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월세라는 것도 납득이 갔다.


그런데 이제는 뭐랄까.. 그래 1인가구. 이제 정식 단위가 되었다. 혼자 생활하기 좋은 전세집에 혼자 생활하는 라이프스타일. 거쳐가는 단계가 아니라 어른이 되는 기초단위가 된 느낌.


오히려 결혼이 늦어지고 선택이 되어가면서 누구든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하는 삶의 단계가 된 느낌.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지고

내 꿈도 혼자 사는 삶 위에 자리잡는다.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지고

내 가치관에 맞게 삶을 꾸려간다.



-Cheol


누군가의 도움 없이 너를 스스로 책임진다는 사실의 의미가 얼마큼의 부담으로 다가와 너를 힘들게 할지 걱정이 되는 한 편 새로운 환경에 덩그러니 놓이는 일이 지금까지 해온 너의 어떤 다짐들보다 너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너는 겁이 난다고 말했지만 잘 헤쳐나가는 네 모습이 나는 선명히 그려진다. 나처럼 별 수 없는 일 때문에 마지못해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울타리를 벗어나려 애쓰는 모습이 내게도 큰 용기를 주고 있어. 나는 아직 완전하게 너를 알지 못하지만 너의 중심이 건재함을 느끼고 더러는 그것에 끌리곤 해. 그래서 네가 큰 흔들림 없이 이내 적응할 거라 믿는 것이겠지. 이제부터 너의 모든 선택이 전과 다른 너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 생각하면 나도 갈이 설레는 기분이 들기도 해. 그 변화를 아주 가까이서, 또 먼 거리에서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외려 더 즐겁기도 하고.


자취를 시작하던 스무 살의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더 신경 쓸 겨를 없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 그건 그전부터도 늘 해왔던 생각이지만 이제 그 생각에 대한 답이 시시각각 나의 형상을 이루게 될 거라 생각하니 마냥 쉽지만은 않았었지. 너의 2020년도 성실하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답을 찾아갈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



-Ho


2020년 7월 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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