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마흔 네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어릴 적,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한 마리를 사왔다.


엄마도 아빠도

크게 화냈지만

요구르트 박스에

병아리를 키우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그 박스에 병아리는 다섯마리가 되었다.


밤새 우는 통에

아빠가 외로워서 그런가보다 하고

서너마리를 더 사왔단다.


늘어난 병아리들은 다섯배로

시끄럽게 굴었다.


며칠이 지나고

또 금방 열 마리 가량이 되었다.


근처 삼촌이 자기집에서

키우던 병아리 몇 마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주택가인 우리집에 위탁했다.


어느새 병아리들은

금방 자라나서 박스 밖을

탈출하기 일쑤였다.


병아리도, 닭도 아닌

시끄럽고 쑥쑥 크던 그 병아리들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많던 병아리는 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남은 박스만 처량했다.


옆집 계란아저씨네 개가

물어갔다나-.


삐약거리던 소리에 시달리던

우리 가족은

유난히 조용한 밤의

고요함에 시달려야 했다.


정을 주는 모든 것이

이렇게 쉽게 사라져버린다.

자꾸 그리움만 남아 괴로운 것이다.


누구도

며칠이나 그 요구르트 박스를

버리지 못했던 것처럼.



-Ram


1. 나의 병아리(1)

어언 12년 전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관심있어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모든 것들을 흥미로워 하는 내게,

하루는 친구Y가 하나의 사진을 보내줬다.

바로 병아리 뒷모습.

그냥 뒷모습도 아니다.

병아리가 열심히 뛰어다니는 뒷모습이다.

마치 나라고.

그냥 그 병아리를 보면 나같다고 했다.

작은데 걸음은 꽤 빠르고 여기저기 잘 쏘다니는게

꼭 나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쫑쫑거리며 돌아다니는 그 에너지를

요즘은 그 친구에게 주고싶다.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그 에너지가 양분이 되어

친구가 활짝 필 수 있도록 말이다.

여전히 어여쁘게.

앞으로도 어여쁘게.


2. 나의 병아리(2)

내 가방 속에는 항상 병아리가 들어있다.

친구N이 준 귀여운 병아리.

말레이시아로 떠나기 전,

내게 웃으면서 내밀던 병아리.

알리익스프레스를 애용하던 친구N은

자신의 에어팟케이스를 검색하다가

내 에어팟케이스까지 사버렸다고 했다.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반영한

샛노란 병아리케이스다.

사실 실리콘케이스를 선호하진 않지만

친구N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소중할 이유는 충분하다.

지금도 때가 타도록 주구장창 사용하는 중이다.

병아리케이스가 에어팟 몸체와 뚜껑이 분리되어있는 케이스라

아주 가끔씩 에어팟 뚜껑을 열면 뚜껑케이스가 빠질 때가 있다.

그럴때면 대머리병아리 같다.

그것마저 귀여워.

친구N이랑 만나기전까지

잃어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가지고 다녀야지.

(특히 병아리 머리(뚜껑)부분...)


3. 엄마의 병아리

엄마: '대부도 포도 한상자 사옴... 연희생각 같이 먹으면 더욱더 맛잇을텐대~~~^^ㅎ'

나: '내 몫까지 드세용!'

엄마: '연희 과일좋아하잖아!!! 내가 과일 젤 좋아하는거 같아... 연희하구~~~^^'

나: 'ㅋㅋ 맞앙 그래서 난 자두사왔어! 납작복숭아 다먹고!'

엄마: '그러게! 냉장고에 과일없으면 먹을게 없는 거 같아!ㅋ'

나: '요플레도 사다두고 요구르트도 !'

엄마: '맞아...항상 잇어야해 ㅎ'


(식성을 똑 닮은 엄마와의 대화 중)



-Hee


"이번 검수에서 나온 조치필요 항목만 스물 한 건이라고요"


그의 불만은 투계 판으로 비유되는 이 싸움판에서 살아남으려면 투계에 잔뼈가 굵은 싸움닭들만 모아놓아도 모자를 판인데.. 팀 구성원들이 햇병아리들로만 꾸려지고 있다는 일종의 초조함과 위기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목계지덕이라 전해지는 장자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다른 닭들이 우리에게 맞서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교만하여 힘에만 의지하는 마음도 아니고 진중함을 갖추고 상대에 대한 공격성을 버리는 것이 으뜸일진데, 일부 햇병아리들을 품었다 한들 어떠할까? 진중함부터 갖추고 공격성을 버려 닭들 조차 갖출 줄 아는 그 마음가짐을 잔뼈가 굵은 우리부터 갖추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싸워나갈 투계판이 앞으로도 창창한데 햇병아리 몇마리가 들어왔다 한들 사소한 일에 동요하고 흔들려서야 이 난국을 어찌 헤쳐나갈까 싶었다.



-Cheol


미트볼 먹으러 이케아에 갔다가 개미지옥 같은 쇼룸을 성실하게 구경했다. 지름길을 이용하지 않고 지나친 곳을 되돌아가 꾸역꾸역 보고 걸으면서 의자에 앉았다가 소파에 앉았다가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가. 집이 조금만 더 크면 이런 소파 하나 정도는 들일 수 있겠다. 우리 집도 이렇게 따뜻하게 꾸미고 싶어.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미트볼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동거할까 우리? 내가 부산에 와서 같이 살까? 결혼을 일찍 할까? 병아리 삐약삐약 같은 소리들. 초등학교 앞에서 사온 병아리처럼 곧 스러지거나, 길고양이에게 물려 죽거나, 어쩌면 잘 자란 다음에 목이 비틀린 채 뜨거운 솥에 들어갈지도 모를 가벼운 바람들. 사실은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번듯한 자가 한 채가 갖고 싶은 거였으면서. 결혼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Ho


2020년 8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