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마흔 일곱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뭐가 문제였는지

넌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할거야.


별 것도 아닌 일에

유세라던 너였지만


그 사소한 행동들이

우리의 마지막을

안내했다는 것을 알까.


나는 지금도

불같은 화 속에서

타죽는 끔찍한 꿈을 꾸는 것 같다.


네 이름이 들려오면

너가 꼭 이만큼 아프기를 기도했다.


반드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을 겪기를 저주했다.


네가 죽도록 미웠다.

그게 결국 나를 미워하는 건 줄도 모르고.


그래도 나는

여전히 네가 너무 밉다.



-Ram


1.

아무리 누구 탓이라고 돌려봐도 결국 내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파트너가 일을 못하는 것도, 결국 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불어 의사소통 또한 문제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들어서 스스로 답답했다. 내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했다면 이것보다 잘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만약 저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더 결과물이 나아졌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그 생각 끝엔 내가 결국 원인을 다른 것으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그냥 내가 다 잘하면 될 일이였잖아. 누구 탓할 필요 없잖아. 그렇게 결론을 내 버리니 흥이 떨어졌다. 재미가 없었다. 흥미롭지 않았다. 주변은 모두 그대로인데, 마음을 엇나가게 먹어버리니 모든 게 삐뚤어져 보였다. 그러자 이렇게 가다간 또 답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진정시키고, 또 진정시켰다. 다시 해보면 되겠지. 다시 하면 되겠지. 다시 첫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시작하면 되겠지.


2.

마일스톤을 조금씩 달성해가며 성취감을 얻는 것이 또 하나의 방법.


3.

행복할 때보다 우울할 때, 아꼈던 노래들을 꺼내 듣는 밤. 이상한 전개.



-Hee


특별히 화낼 일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런 말실수를 할 수 있다는게 사회분위기였고 특정인의 인격적인 문제는 그냥 그 사람과 내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개인적인 문제였을 뿐이다.


애초에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배려심이란 것은 선택적이다. 사람이 모여 집단양식이 생기고 그 집단이 거대해져 도시화가 되면 익명성 속에서 벌어지는 불쾌한 일들은 아주 쉽게 개인적인 문제로 폄하되곤 한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생기기 마련인걸까.. 그늘 속에서 벌어지는 불쾌함들로부터 생겨나는 스트레스는 언제까지 견뎌내야 하는걸까?


‘82년생 김지영’이란 책과 영화에서 그려 낸 모습은 그 스트레스의 끝을 보여준다.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려 했던 그 책과 영화에서 조차도 문제해결은 결국 개인의 노력과 심리치료에 맡겨둔 채 사회에 퍼진 우리들의 그림자에 대해 뚜렷한 무언가를 제시하진 않는다. 아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그림자들에 대해 각자 생각해보게 만든 것만으로도 문학작품의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고 볼 수 있겠다.


여전히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여전히 주위에서 이러한 그림자를 맞닥뜨린 이들.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시선에서 더 뚜렷하게 보이는 일들만 조명했지만, 어둠이 드리운 곳은 사실 더 많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이렇듯 특별히 화낼 일은 아니었다만..



-Cheol


1.

간단하게 알아보는 mbti 궁합표가 infp와 istj는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란다. 누구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 좋아했는데 궁합 테이블의 붉은색이 지영이와 나의 관계를 경고하고 있다. 순진하게 그런 걸 신봉하지는 않지만 괜히 조금 신경이 쓰인다. 그녀와 내가 다른 점. 때로는 실망스럽고 화가 치미는 부분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지나온 부분들. 실은 그게 서로의 다름을 짚어가며 인정한 게 아니라 싸우기 싫어 회피해버린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mbti 궁합이 다시 되새겨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더 나은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서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내가 상대의 유약함, 나태함, 모자란 부분을 채워야 된다는 생각은 더 하지 않는다. 굳이 잘못을 짚어주고 화를 내는 일보다 그러려니 하며 헐 대박, 공감하는 척 슬그머니 넘어가는 게 결국엔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걸 드디어 인정한다.


2.

독서실 위층의 소음 때문에 머리가 울린다면서도 환불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 꺼내기가 어려워 며칠 더 다니며 적응해보겠다고 말할 때도, 음식물 쓰레기를 한 번도 버려보질 못 해서 방치해뒀다가 부모님께 혼났다는 말을 할 때도, 사실은 그냥 한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차마 그런 일들까지 그럴 수도 있겠다며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언제까지 그렇게 편하게만 지낼 수 있을 것 같냐고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화를 한 번 쏟아내고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종류의 일들이 아니었다. 스스로 해내야 할 일들. 말하자면 걸음마 같은 일들. 언젠가 한 번 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일들을 대신해 줄 수는 없으니까. 못 들은 척 대꾸도 안 했더니 며칠 뒤 지영이는 결국 스스로 해냈다. 서른한 살의 늦은 걸음마. 이걸 대견하다 말해도 될는지.



-Ho


2020년 8월 3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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