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마흔 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우리 집에 커다란 가죽 소파가 새로 생겼다.


내가 발 뻗고 누워도 충분할 만큼 넉넉한 너비에

매일 조심해야하는 옅은 회색 빛의 연약한 소파.


태어나서 무언가 가져본 것중에

자동차 다음으로 큰 것이다.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게

이렇게 기쁘고 연약하며

소중한 기분이었다는 것을.


오랜만에 깨닫는다.


20대 때엔 가지지 못한 것들을 탐하느라

감정을 써버렸고

30대 때엔 갖고 싶지 않은 것들을 정리하면서

감정을 쓴다.


아니 가질 수 없는 것들이 맞겠지.


시간이 지날 수록 살 수 있는 물건의 크기는 커지는데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모양은 줄어든다.


나랑 비슷한 모양만 만나고 싶어서일까,

마음을 주고 받으며 되깎기가 두려워서일까,


어느 편에 서더라도

지금 누워있는 이 소파 만큼이나

큰 만족감을 주는 존재가 없으리라.

아직은.



-Ram


1.

사실 난 아예 소파를 들일 생각이 없었다.

보통 떠올리는 집의 구조를 깨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소파 자리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티비자리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있고 싶은(편안하게 반쯤은 누워앉을 수 있는 그) 숨은 니즈가

사람을 침대로 향하게 했고,

외로운 테이블은 주인 없이 홀로 어둠 속에 놓여져 있을 때가 많았다.

소파가 없으니 사람이 침대로 가는구나.

테이블도 테이블 나름의 쓰임새가 있었지만 소파를 대신할 수는 없구나.

그 뒤 레이스 문양이 있었던 남색 소파가 들어왔고,

어느 순간 하얀 무광 책상이 생기면서 자리가 무색한 테이블은 시골 어딘가로 보내졌다.

난 남색 소파에 모서리 자리에 몸을 반쯤 뉘여 책을 읽었고,

남색 소파 끝 손잡이 부분을 베개삼아 티비를 보았고,

(어디선가 읽었던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라던)

바닥에 내려와 앉은 후 남색 소파에 등을 기대고 과일을 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파의 중간 자리가 약간 주저앉긴 했지만

70만 원의 남색 소파는 충분히 제 역할을 잘해줬다.


2.

'소파'라는 노래를 알게 된 건

상대방이 누군가 부를 노래의 반주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을 때.

그 이후로 괜히 한 번 더 눈길을 주던 노래.

이렇게 누군가와 우연스럽게 엮인 노래는 그 사람의 기억을 함께 묶어버렸다.

하루는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몇 년을 묵혀두었던 고백을 들은 후

다음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어떤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딱 그 사람의 성격, 특성과 놀랍게도 너무 비슷해버려서 그 노래는 그 사람이 되었고,

또 어떤 노래는 노래 자체가 굉장히 풋풋하고 설레는 느낌이어서,

떠올리면 매우 동일한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 추천을 해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겠지만)

이렇게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작 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플레이리스트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노래와 함께 엮여있다.



-Hee


우리 둘이

하나인 듯


그렇게 서로

얽히고 설켜


함께 누울

소파 하나 놓을


물리적 공간도

마음 속 여유도


아련히 노을 지는

하늘 한 뼘 볼 창문도


어쩌면

우리 사이

애틋한 마음

놓을 공간


한 뼘도



-Cheol


리모델링 전에는 부엌과 안방, 대청마루였던 공간이 넓은 거실이 되었다가, 무허가 증축 판정을 받고 한 쪽 벽이 뜯긴 채 비바람 들이치는 비참한 창고가 됐다.

우리집 거실 없어져서 어떻게 해 이제.

거실이 없긴 왜 없어. 사람 앉을 수 있고 tv있고 그러면 그게 거실이지.


그래서 지금 내가 앉은 이곳은 거실이다. 원래는 마당의 일부였던 곳. 사람이 둘 누우면 가득 차 보이는 거실. 어쩌면 복도라는 이름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공간. 당연하게도 소파는 없다. 소파를 두고 앉으면 사람 한 명 걸어서 지나가기도 힘들어져 복도의 역할마저 상실하고 죽은 공간이 될 테니까.


평생 소파 없이 살았으니 그게 왜 필요한지 모를 법 한데도 나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소파를 사고싶은 사람이다. 벽이 뜯겨 나가고 난 뒤부터 그 마음이 더 커졌다. 지긋지긋한 집이 소파 하나 들인다고 쾌적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장마철마다 비가 새는 집. 여전히 소파 하나 들이기도 어려운 비좁은 집. 이 거지 같은 집이 꼭 우리 가족을 대변하는 것 같을 때 어떤 소파를 살지 검색한다. 비겁하게도 이 비좁은 집에 들여놓을 생각은 없고, 새로 얻을 내 집에 들여놓을 소파다. 그래서 마침내는 탈출인지 도망인지 모를 안정을 찾을 것이다.



-Ho


2020년 9월 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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