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쉰 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너의 20대가

얼마나 반짝였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앞으로의 네가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 이야기 해 줄 순 있다.


너는 정말로 어여쁘고,

멋진 사람이라고

누군가는 얘기해주어야 했다.


손을 잡으면 손이 예쁘다고,

눈을 보면 눈이 예쁘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모양새여도

어디에 있어도


너는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렇게 풀 죽을 필요 없다고.

그렇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라도 해주어야 겠다.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Ram


1.

내 시력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라식이나 라섹 등 교정을 위한 수술을 할 만큼의 용기는 없다. 벌써 렌즈를 착용한 지 17년 정도 된 것 같다. 중학교때부터 콘텍트렌즈-하드렌즈를 지나 이번엔 한달용 콘텍트렌즈를 사용중이다. 물론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 운동할 때만 착용하고(러닝할 땐 제외) 집에 오면 무조건 제일 먼저 렌즈부터 뺀다. 눈이 나쁜 사람들은 다들 알다시피 렌즈나 안경을 착용한 직후엔 시력이 평소보다 순간 더 나빠진다. 안그래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눈이, 렌즈를 빼고 나면 더욱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답답함을 갖고 살게 된다. 이런 와중에 조명마저 어두워버리면 너무 답답해진다. 그래서 집에선 웬만하면 항상 밝게 불을 켠다. 누군가는 불을 끄고 미미한 조명빛을 켜고 지내는 것을 선호하지만, 눈이 좋지 않은 내겐 매우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말레이시아 집은 한국처럼 아주 밝은 형광등이라기보다는 노랗고 은은한 빛이어서 처음에 적응하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인간은 역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이제는 은은한 불빛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래도 아직까지 집에서 불을 다 끄고 작은 조명만 켜놓는 건 못하겠더라.


2.

그래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만 보던 사람을 환한 곳에서 보는 게 사실 익숙하진 않더라. 어두운 조명 아래에선 없던 감정도 생기는 마당에, 환한 조명 아래에선 마치 환상이 깨지듯 있던 감정도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항상 그 사람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만 찾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Hee


공간과 사물 그리고 빛.


같은 공간 같은 사물 똑같은 빛 이라고 할지라도


어떠한 공간에 어떤 사물들이 존재했었는지

어떠한 의도로 빛이 그 사물들을 비쳤는지에 따라

다른 인상과 해석들이 일어난다.


우리 또한 그런게 아니었을까?


똑같은 우리였다고 할지라도

같은 공간에 서로 존재 해 왔음에도


시간에 흐름에 따라

그 구성과 의도들이 바뀌어가고


매번 다른 해석이

존재하듯이 말야



-Cheol


1.

미세먼지가 따뜻한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날이면 초겨울이 다시 늦가을이 되곤 했지만 해는 꾸준히 자기의 길을 가서 이제 다섯 시 무렵이면 어둠이 짙어지고, 이미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며 퇴근하는 나는 분명히 겨울이 오긴 했구나 생각했다. 이사 간 집은 서향이지만 바다로 흘러드는 낙동강 하구를 훤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이제부터 몇 달간은 해가 다 진 시간에나 집에 들어올 테니 리버 뷰를 마음껏 볼 일이 없다. 어두컴컴한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조명이 조금 더 중요한 역할을 갖게 됐다. 눈 아프게 밝기만 한 led 조명은 고양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2.

조명을 사러 이케아에 가서는 미트볼을 사 먹었고 조그마한 벽 선반을 하나 사왔다. 마음에 드는 조명이 지나치게 많아 오히려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설치가 어려운 것은 빼고, 고양이가 쉽게 망가뜨릴 수 있는 것들도 빼고, 이케아스럽지 않은 가격대의 조명도 뺐더니 손에는 벽 선반만 하나 남았다. 선반을 한 손에 들고 주차장을 털레털레 걷는데 좀 한심한가? 싶기도 했지만 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 된다. 마음 같아서는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지만 미리부터 열변을 토하는 지영의 성화에 크리스마스트리와 조명을 사다가 꾸며야 할 것 같다. 내 집의 겨울 동안 가장 중요한역할을 하는 조명에도 내 취향은 깃들지 않을 것이라니. 미련하기도 하지. 사실 원래도 그랬었지만 정말 마음처럼 되는게 잘 없다.



-Ho


2020년 11월 15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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